[브릿지칼럼] 젊은 그들이 투표로 해 낸 민주의거

이해익 경영컨설턴트
입력일 2016-05-26 15:06 수정일 2016-05-26 15:07 발행일 2016-05-2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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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익 경영컨설턴트

젊은 그들이 해냈다. 대한민국의 2030이 선거혁명을 이뤘다. 고등교육을 받은 그들이 조용하게 투표로 일궈낸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책임회피 그리고 오만하고 뻔뻔한 친박 · 비박 패거리의 새누리당을 응징한 것이다. 

개헌선 단독 돌파를 꿈꾸는 집권당을 참패시켰다. 180석 이상을 장담하던 여당을 징치했다. 제 1당의 오만을 꺾고 제 2당으로 주저 앉혔다.

누구도 예측치 못했다. 누구도 몰랐다. 그래서 혁명이다! 밥먹고 정치만 한다는 황새도 몰랐고 뱁새도 몰랐다. 주야 없이 떠드는 앵무새도 몰랐고 재재대는 참새들도 몰랐다. 언론도 새카맣게 몰랐다. 잡새들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마비되고 불순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큰 일이 될 줄 젊은 그들도 몰랐을 게다. 수십년 기득권을 누려온 그들을 이렇게 패배시킬 줄 사실 2030들도 몰랐을 게다. 그냥 처절하게 분노했고 순수했을 뿐이었다.

가깝게는 박근혜 정부 출범기인 2013년 방미 외교현장이 창피했다.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에 아연실색했고 절망·분노했다. 대통령의 입이라는 자가 한국대사관 여성인턴을 호텔방으로 불러 허리(엉덩이)를 더듬다니. 2014년은 더 참혹·처참했다. 세월호 사고로 숨진 꽃다운 소년 소년들 때문이다. 해운사의 부조리와 선장의 부도덕과 정부의 무능에 삼중사중으로 오열했고 또 분노치 않을 수 없었다. 2015년도 답답했다. 메르스 사태 때문이다. 정부의 늑장 대응과 ‘모르쇠’ 태도에 분노했고 한국 제일 큰 병원의 미흡한 대응 때문에 안전 공포로 시달렸다.

그 뿐인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친일과 반일의 하염없는 논쟁에 시달려야 한다. 애초부터 경제민주화는 오염됐고 복지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새누리당 직전 정권인 MB정부의 사자방(4개강 폐해, 자원외교비리, 방위산업부정)은 두고두고 역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젊은 그들에게 2016년 총선은 답답한 현실을 송두리째 타개하려는 조용한 운동이요, 혁명거사였다. 사실 이 울분의 토로는 뿌리가 깊다.

1960년 4월19일, 4·19혁명이 큰 형이며 1987년 6월 항쟁이 작은 형인 셈이다. 29년전 일이며 또 그로부터 27년 전 일이다. 그렇다면 1919년 3·1운동은 어버이가 되는 셈이다. 보라, 네 혁명 모두 고등교육 받은 2030들, 이른바 젊은 시민(市民)들이 중심이었다. 현대사를 변혁시킨 국가적 대역사였다. 무식하면 잘 속는다. 무식한 게 죄다. 교육을 받아야 세상을 분별할 수 있는 시민의 존재가 되고 국가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 그렇게 강조한 것이 교육이었다. “독립의 쟁취는 전쟁으로 이뤘지만 독립을 지키는 것은 교육이다.” 오늘의 오바마 대통령도 교육에 열렬하지 않은가.

세 번은 길거리에서 피 흘렸으며, 이번에는 무혈로 스마트하게 민주주의를 썼다. 27년, 29년이란 세월이 흘러야 하는 모양이다. 그 나이가 되어야 자기 밥벌이하는 성년이 되듯이. 그러나 아직도 숙제는 끝나지 않았다. 젊은 그들도 알 것이다.

이해익 경영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