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동일성과 동일임금이 시대적 요구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
입력일 2016-05-18 18:00 수정일 2016-05-18 18:00 발행일 2016-05-1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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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조금만 뜯어보면 가당치 않은 주장임이 드러난다. 같은 노동을 했으니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건 언뜻 들으면 그럴 듯하다. 하지만 보상은 투입량이 아니라 산출량과 성과에 따라야 비즈니스가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성과가 없다면 인지상정으로 안타까운 마음이야 들겠지만 보상이 충분할 수는 없다. 성과와 무관하게 보상을 제공한다면 성과평가 체계가 무력화되고 사회활동성이 위축될 것이다.

그런데도 노동계에서는 철 지난 동일노동 동일임금 논리를 금과옥조인 양 여긴다. 특히 정규직의 노동자가 누리는 특혜적 지위를 지속하기 위해 노조 세력이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대체 왜 그런 안이한 이야기가 오간단 말인가.

프로야구에서는 3할 타자와 2할 5푼 타자의 연봉이 같지 않다. 두 선수가 똑같이 동계 훈련을 소화하고 출장한 경기 수가 같고 심지어 타석에 들어선 횟수까지 모두 똑같다고 해도 그렇다. 두 선수가 동일한 노동을 했는지는 몰라도 팀과 팬들에게 동일한 가치와 효용을 가져다 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비슷한 안타를 쳤더라도 그 팀 승리에 끼치는 효과가 다르다. 보상이 비슷하다면 운동선수들은 경기에 이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운동장에서 오래 머물러 있기만 할 것이다. 거기서 그냥 버티고만 있어도 보상이 저절로 나올 테니 말이다.

얼마 전 용접공의 월급 명세서가 공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천만 원에 달하는 급여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물론 용접 일은 전문적이고 숙련된 노동행위라 그 용접공의 숙련도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의 수익성을 떠나 모두가 동일하게 근속년수에 따라 높은 보상을 받는 것이라면 이는 분명 문제가 있다.

노동계는 노동자의 평등화를 추구하는 속성이 있다. 회사 내에서 임금을 똑 같이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나 심지어 같은 업종에 있는 기업들은 임금을 같은 수준으로 맞춰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근속년수나 노동시간이 같다고 모두 똑같은 임금을 받는 게 맞는가? 보상의 공평성을 논하기 위해서라면 동일노동 동일임금보다 ‘동일성과 동일임금’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 산업 현장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틀을 깰 때가 되었다. 이제 우리 노동시장이 혁신을 이루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보수체계를 합리화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근속년수가 많아지면 무조건 급여가 늘어나는 호봉제를 직무에 따라 급여를 제공하는 직무급 방식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또한 동일한 노동 행위라 하더라도 성과가 다르면 임금도 다를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의 임금방식은 성과연봉제가 시대적 요구인 셈이다.

‘만인은 평등하다’는 말을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 해석하기보다 동일성과 동일임금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경제적 성과보수 체계에 잘 부합한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성과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이 자연스런 경제질서이며 이것이 오히려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현대적 방식이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