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꿀벌의 우화와 김영란법

윤기설 한국폴리텍대학 아산캠퍼스 학장
입력일 2016-05-19 07:00 수정일 2016-05-19 07:00 발행일 2016-05-2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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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설 한국폴리텍대학 아산캠퍼스 학장

‘개인의 이기심이 사회 전체적으로 도움이 된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 스미스가 주장한 내용이다. 스미스는 1776년에 쓴 ‘국부론’에서 “개인은 공익을 추구하려는 의도가 없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만 이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의도하지 않는 공익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스미스 보다 반세기 이상 앞서 이 같은 내용을 주장한 학자가 있다. 네덜란드 출신 철학자이자 의사인 버나드 맨더빌이 그 주인공. 

그는 ‘꿀벌의 우화’(1714년)라는 저서에서 경제가 굴러가는 것은 인간의 도덕심이나 자비, 선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금욕과 절제, 고결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던 시대에 도발적인 이 책은 당시 유럽 지식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우화 형식으로 된 이 책의 골자는 이렇다. ‘사치와 탐욕, 이기심이 지배하던 꿀벌의 왕국에는 늘 일자리가 넘쳐 났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은 꿀벌들이 사치와 탐욕 대신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업자가 넘쳐나 결국 꿀벌의 왕국이 망하게 됐다는 것.’

맨더빌은 온갖 부도덕과 이기심을 번영의 원동력이라고 추겨 세운다.

꿀벌의 왕국에서 사치는 가난뱅이 백만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었고 거드름과 오만은 또 다른 백만을 먹여 살린 고마운 덕목이다. 

사치와 탐욕, 부도덕을 경제를 살리는 성장에너지로 해석한 이러한 시각은 시장을 중시하는 스미스에 영향을 미쳐 ‘국부론’의 핵심 명제로 등장했다. 맨더빌은 경제학이론의 기초를 닦은 스미스의 사상적 스승인 셈이다. 

이 이론은 개인의 행복추구를 더 이상 악덕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만들며 공리주의 형성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지난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안이 예고된 뒤 찬반 논란이 뜨겁다.

식사 3만원, 선물5만 원, 경조사비 10만원 이상이면 과태료를 물겠다는 시행령안이 발표되자 농수축산물 생산단체와 중소기업들은 매출에 큰 타격을 받는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고가의 선물과 접대문화를 뿌리뽑아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지금은 경제를 살려야 할 때라는 인식이다.

우리 사회가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자리창출과 경제살리기라는 현실적 측면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학연과 지연, 온정주의 문화가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접대와 선물 관행이 유지되어야 ‘꿀벌’들의 일할 의욕을 부추기고 경제가 굴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부정부패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규제가 심한 나라에서는 오히려 경제효율성과 시장의 힘을 증대시킬 수도 있다”(장하준 케임브릿지대학 교수)는 분석도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경제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부정직한 관료보다 정직한 관료가 존재하는 사회가 더 나쁘다”고 갈파한다. 

부패보다 규제가 더 나쁘다는 얘기이다. 정부와 여당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감안해 김영란법 개정을 신중히 검토하는 것 같다. 경제살리기와 깨끗한 사회만들기 가운데 어느 것에 방점을 찍을 것인가. 꿀벌의 우화에서 그 답을 찾아보면 어떨까.

윤기설 한국폴리텍대학 아산캠퍼스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