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뿌리산업을 살리자

박봉규 건국대 석좌교수
입력일 2016-05-02 16:08 수정일 2016-05-02 16:08 발행일 2016-05-0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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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석좌교수
박봉규 건국대 석좌교수

뿌리산업이란 주조, 금형, 용접, 열처리 등 산업생산의 기초공정을 담당하는 산업을 말한다. 3D 업종의 대명사요, 청년들의 취업기피 영역이다. 산업체에 종사하는 분들의 평균연령도 높아 머지않아 이들이 산업현장을 떠나고 나면 산업 자체가 없어질 위험에 노출된 산업이다. 영세한 하청중소기업이 대부분이고, 공해업종이라 지역사회에서도 홀대받는 영역이다. 조만간 우리가 포기할 수밖에 없는 분야로 치부되고 있다.

그러나 아니다. 뿌리산업은 전통제조업의 토대이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모든 공산품에 내재되어 최종제품의 품질과 성능은 물론 제품자체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모든 첨단제품도 결국 그 바탕에는 뿌리산업의 경쟁력이 자리잡고 있다. 스위스의 손목시계, 독일의 고급자동차, 이탈리아의 핸드백과 같은 세계적 명품들에는 든든한 뿌리산업의 뒷받침이 있다.

뿌리산업은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개도국의 기술추격을 물리치는 데에도 유용한 수단이다. 공정의 특성상 암묵지로 체화되어 몸과 손끝으로 느껴야하는 기술이므로 단기간 내에 기술습득이 어렵고 개도국에서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선진국의 마지막 기술영역이다. 기능올림픽에서 메달을 석권했던 우리의 기능공들이 포진해 있는 곳이다. 하청중소기업 형태로 그것도 저임금 노동자들을 다수 고용하고 있어 서민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꼭 필요한 산업이다.

시간은 뿌리산업에 불리하게 흐르고 있다. 고령 근로자들의 은퇴로 기술의 맥이 끊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이들 산업은 도시재개발과 환경을 이유로 외곽으로의 이전을 강요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산업은 그동안 주변지역, 업종, 교통망과 연결되어 자연스레 자리를 잡아 왔기에 장소이전을 강요하면 이전보다는 폐업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더 크다.

지금이라도 경쟁력 열위와 3D업종의 특성상 입지난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해 시설 현대화와 환경개선 추진에 필수적인 협동화나 집적화 지원에 정부가 팔을 걷어부쳐야 한다. 기업의 집단화, 공동화, 협업화를 통하여 기존 뿌리산업 집적지의 생산성 향상과 입지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규모의 영세성이나 가난한 근로자들이 대도시에 거주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 뿌리산업에 특화된 맞춤형의 소규모 산업단지나 친환경의 아파트형 공장을 건립하고 친환경 설비구축을 지원해야한다. 여건상 집단화가 어렵다면 기존 집적지에 대한 입지환경 규제를 완화하여 현재의 위치에서 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무등록 공장의 제한적인 양성화와 함께 공동폐수처리시설, 공동연구장비의 보급, 시제품제작지원 등의 공공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도시외곽에 최적의 입지공간을 갖춘 새로운 단지를 만들고 신성장동력으로 첨단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뿌리가 없는 첨단산업, 기반이 없는 신성장동력산업으로는 고용창출과 지역경제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산업화 시기를 통해 어렵게 구축해놓은 우리의 강점을 활용해야 한다. 뿌리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디디고 있어야만 또 다른 경제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박봉규 건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