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석유 전자상거래, 과연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입력일 2016-04-28 14:37 수정일 2016-04-28 14:42 발행일 2016-04-28 23면
인쇄아이콘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올해로 석유시장에 전자상거래제도가 도입된 지 3년이 됐다. 이 제도는 2012년 3월 첫 출발할 때부터 논란이 많았다. 원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오르내리던 당시, 정부는 석유가격의 투명성 제고와 경쟁촉진을 통한 유가인하 차원에서 이 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취지는 좋지만 석유시장에 현물 전자상거래제도를 도입한 전례가 세계적으로 없을 뿐더러, 석유시장의 현실을 모르는 정책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기름 값이 이상하다”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 한 마디에 눌려 정부는 알뜰주유소와 전자상거래제도 도입을 밀어붙였다.

출발 당시 수입 석유와 국내 정유사 제품과의 경쟁 촉진을 위해 석유수입사들에게 리터당 16원씩의 수입부과금을 환급해 주는 인센티브를 주었다. 국내 석유제품과 비교해 16원 저렴한 파격적인 특혜 효과로 초기에는 일본산 경유 등이 1조원 이상 수입돼 국내 시장을 상당수 잠식했다. 그러나 수입부과금이 8원으로 축소되고, 국제 석유시장의 가격체제가 바뀌면서 국내로 유입되는 수입석유의 량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정부는 시장 유지를 위한 고육책으로 국내 정유사들을 끌어들인다.

당초 1년간 한시적으로 도입됐던 수입부과금 환급 제도는 해가가면서 바뀌어 현재 경쟁매매 시는 리터당 8원, 협의매매 시는 4원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인센티브 덕분에 전자상거래 시장은 올 3월말 현재 경유는 1만8398만 리터가, 휘발유는 7450만 리터가 거래돼 국내 소비량의 10%대에 육박하고 있다.

양적으로 보자면 개장 이후 3년 만에 국내 석유시장에서 자리매김을 한 것 같지만 한 꺼풀 벗겨내고 보면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전자상거래의 가장 큰 장점은 불특정 다수의 공급자와 구매자가 온라인상에서 만나 가격과 물량을 경쟁적으로 흥정하며 가격인하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석유 전자상거래의 경우 경쟁매매에 대한 차등적 인센티브에도 불구하고 경쟁매매가 전체 거래량의 50% 미만이다. 나머지는 협의매매로 이는 장외에서 미리 매도자와 매수자가 가격을 정하고 돈을 전자 상거래시장에서 오가는 거래다. 이렇게 되면 애초 기대했던 경쟁을 통한 유가인하라는 취지는 사라지고 만다. 결국 협의매매를 통한 거래 당사자들만 이득을 볼 뿐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없게 되는 것이다.

해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많았다. 소비자 가격 인하는 미흡한 반면 협의매매를 통해 매도자인 정유사와 대리점들만 이익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억지 춘향 격으로 발을 담그고 있는 정유사들은 이러한 지적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고 싶어 한다. 덩치 큰 정유사들이 석유수입부과금 환급금까지 챙겨가는 탐욕집단으로 자칫 국민에게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거래 시 쌍방에게 부과되는 KRX(한국거래소)의 수수료다. KRX는 올해 초부터 수수료를 2배 인상하여 경쟁매매는 거래 금액의 0.04%, 협의거래는 0.05%를 부과하고 있다. KRX는 전자상거래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업계는 이러한 부담이 오히려 유가인상의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는 지난 15일 수입부과금 환급을 1년 더 연장하는 석대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차제에 수입부과금 인센티브가 유가인하에 효과가 있었는지, 시장유지를 위한 연명책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는지에 대해 냉철하게 따져볼 일이다.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