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세상의 ‘신호’를 훔쳐라

정보철 이니야 대표
입력일 2016-04-24 14:24 수정일 2016-04-24 14:25 발행일 2016-04-2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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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철 주간
정보철 이니야 대표.

“아빠, 계절이 바뀌는 것을 어떻게 알아?” 여덟 살 딸이 묻자 달력을 보면서 말했다. 

“5월로 넘어가잖아.” 하지만 딸은 귀에 손을 갖다 대고 말했다. “아니야. 소리로 알아. 봄의 소리가 들려, 여름에는 여름의 소리가 들리지.”

세상은 소리로 자신을 표현한다. 사물뿐만 아니라 사건, 실체, 현상, 대상, 과정 등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소리를 보내고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의 소리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정확히 말하면 소리에 묻혀 있는 그림자를 보지 못한다. 그 소리의 그림자가 신호, 즉 기미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소리만 들을 뿐 소리 속에 숨어 있는 신호를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신호를 감지하는 것은 삶에서 의미가 깊다. 신호는 ‘진실’과 ‘진실 같은 것’, 즉 사이비(似而非)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진실은 전면에 등장하기 전에 신호를 보낸다. 아주 작은 미세한 파동으로 자신의 전체를 드러내려한다. 그런 작은 파동이 낌새 또는 기미이고, 이것을 읽어내는 능력이 바로 지기(知機)다. 낌새를 읽고 받아들이는 능력, 바로 지기가 삶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다

삶의 길목에서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할 때, 선택의 갈림길에서 진실은 선택의 기준이 된다. 진실이 미세한 신호를 통해 본 면목이 드러나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기미를 읽는 자는 역사의 승자이고, 기미를 무시하는 자는 역사의 패자로 귀결되는 것은 다반사이다. 그렇다면 이 기미를 잘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공자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자의 제자들은 스승인 공자에게 네 가지가 없었다고 했다. 그 네 가지는 ‘의필고아(意必固我)’를 이른다. 여기서 ‘의(意)’는 근거 없는 억측, ‘필(必)’은 자기주장을 기필코 관철시키려는 자세, ‘고(固)’는 융통성 없는 고집, ‘아(我)’는 자신을 내세우는 것을 말한다.

의필고아가 없는 마음은 열려 있는 마음, 그 자체다. 인간과 자연, 삶과 역사가 던지는 수많은 신호를 아낌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마음이 열려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신호에는 진리가 담겨 있다. 무릇 진리를 추구하는 자는 신호에 민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닫혀 있어서는 안 된다. 열린 마음이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서두로 돌아가 보자. 여덟 살 아이는 봄이 오는 것을 달력이 아니라 자연의 소리로 먼저 알아차렸다. ‘봄’의 진실은 달력일까, 자연의 변화일까?

때 묻지 않은 아이의 열린 마음이 봄의 진실을 활짝 열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이제 분명히 안다. 아이의 봄과 어른의 봄은 다르다는 것을…. 달력의 봄을 버린 지 이미 오래다. 열린 마음으로 세상이 보내는 신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정보철 이니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