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베이직석 도입 '항공사의 꼼수'

정인호 VC경영연구소 대표 기자
입력일 2016-03-21 15:08 수정일 2016-03-21 23:17 발행일 2016-03-2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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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VC경영연구소 대표

최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여객기에서 가장 저렴한 이코노미석보다 더 낮은 단계인 베이직(Basic) 등급 좌석을 도입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해 이미 델타항공이 베이직석을 도입한 데 이어 올해 유나이티드항공과 아메리칸항공도 베이직석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베이직석은 이코노미석과 좌석 크기는 같다.

하지만 이코노미석 승객이 누리는 주요 권리를 포기해야한다. 비용적 부담이 적다보니 경치를 볼 수 있는 창가석과 기내 앞쪽은 엄두도 못 낸다. 

일단 예약 시 좌석 선택 권리가 없기 때문에 주요 기피 좌석인 기내 뒤쪽의 통로석 사이에 강제로 배정받는다. 예약 후 24시간이 지나면 취소나 환불도 안 된다. 기내 사정에 따라 간혹 제공되는 좌석 업그레이드 서비스에서도 배제된다.

항공사들은 왜 이런 서비스를 내놓았을까?

기내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구별이 심해지는 양극화 현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사회적 비판을 무릅쓰고 말이다. 

만약 당신에게 싼 가격을 매겨 좌석이나 서비스에서 악조건을 제시해 굴욕적인 느낌이 들게 만든다면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 

진정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고객이 베이직석을 타며 여객기를 이용할까? 결국은 돈을 더 내고서라도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려는 의도다. 

더구나 좌석 등급을 세분화하려는 명분으로 베이직석을 만들어놓고 이코노미석의 가격을 살짝 올리는 전략을 쓴다면?

항공사의 3단계 등급 좌석 도입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학생 그룹에서 무작위로 선택한 사람들에게 2만원을 준다. 그 2만원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도 되고 고급 제품인 파커 볼펜과 바꿔도 된다고 했다. 실험결과 120명 중 65%가 2만원을 그대로 보관했고 35%가 볼펜과 교환했다.

다음은 제3의 선택으로 파커 볼펜보다 싼 모나미 볼펜을 추가해 위와 마찬가지로 교환 희망자를 조사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50%가 2만원을 보관했고, 48%가 고급 볼펜과 바꾸기를 바랐다. 나머지 2%는 싼 모나미 볼펜을 희망했다. 싼 볼펜인 모나미 볼펜이 제3의 선택 대안으로 등장하자 2만원과 고급 볼펜 사이의 선호가 바뀐 것이다.

이처럼 여러 대안 가운데 양극단을 배제하고 중간에 위치한 대안을 고르는 심리현상을 ‘타협효과’(Compromise Effect) 또는 ‘극단 회피성’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적당히 중간선에서 타협하는 심리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선택을 바꾸는 일은 실로 매우 빈번하다. 이는 사람들이 종종 비교하기 힘든 두 가지 대안 중에서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즉 두 가지 모두 매력적이며 하나를 선택했다가는 나중에 후회할지 모른다는 염려와 걱정 때문에 어느 한쪽을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관련성이 무관해 보이는 새로운 대안을 살짝 끼워 넣으면 그것이 인간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항공사들이 주로 팔고자 하는 상품인 이코노미석을 의도적으로 한중간 위치에 두기 위해 베이직석을 도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간의 극단 회피성을 고려해 베이직석을 도입한 항공사의 꼼수를 칭찬해 줄 수는 없지만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아는 것은 중요하다. 사회든 경제든 정치든 결국은 인간의 본성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정인호 VC경영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