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21세기형 토지개혁

박봉규 건국대 석좌교수
입력일 2016-03-06 14:43 수정일 2016-03-06 14:43 발행일 2016-03-0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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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석좌교수
박봉규 건국대 석좌교수

고려말 토지제도의 문란을 전하는 기록이다. ‘권문세족이나 지방토호들은 남의 토지를 강제로 빼앗아 산천을 경계로 할 만큼 큰 규모의 농장을 소유한 반면, 가난한 농민들은 송곳 꽂을 땅도 없었다’고 한다.

자기 땅이 없는 농민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연 50% 이상의 비싼 소작료를 내고 지주들로부터 땅을 빌려 경작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예 가족을 이끌고 부호들의 집에 의탁하여 농노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백성들의 삶의 형편과 불만을 짐작할 수 있다. 백성만 가난한 것이 아니었다. 나라도 힘들었다. 세력있는 자들이 토지와 백성을 사사로이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세금은 걷히지 않았고 병역자원으로 동원할 수도 없었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군사력도 그 바탕이 되었지만 결정적인 것은 고려를 떠나고 있는 백성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었던 탓이다. 백성들을 감격하게 한 것은 극단적인 토지편중을 바로잡은 것이다. 개혁세력들은 전국의 토지를 백성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어 모든 농민이 농토를 가진 자작농이 되어 자기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도록 배려하였다. 당연히 빈부격차는 완화되고 국고도 넉넉해졌다.

소작농을 자작농으로 만들고자 한 고려 말의 전제개혁을 오늘에 적용하면 일자리를 제공해 주고 중산층을 두텁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중산층은 생산과 소비의 주체인 동시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호하는 계층적 기반이다. 중산층이 튼튼하지 않고서는 경제성장은 물론이요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충실한 어떠한 정치적 프로젝트도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사회는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소득 불안정이 가속화되고 있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오늘이 불안하고 내일은 더 두려운 형편이다.

우리 경제는 자본소득과 노동소득간의 심각한 불균형이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은 물론 사회통합까지 저해하고 있다. 노동소득분배율과 실질임금이 높아져야만 성장이 가능한 상황이다. 고려 말 대농장의 번성과 소작농의 몰락을 개선한 전제개혁과 같은 혁명적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경제운용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자랑하던 성공모델인 기업중심의 신자유주의 성장정책의 한계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대한 규제완화와 기업지원을 중심으로한 정책은 분명히 기업소득 증가에는 기여했으나 서민이나 중산층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이제 종래의 기업소득 증대 중심에서 노동소득과 가계소득 증대 중심으로, 수출주도에서 실질임금 향상을 통한 내수촉진으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통계숫자에 매달리기보다는 숫자로 표시되지 않는 삶의 질의 향상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물론 자주 다녀본 길이 익숙하고, 새로운 도전은 불안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달라진 것을 구태여 외면하고 과거의 성공경험에 젖어 어제의 정책을 반복하다가는 점점 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언제 죽는지도 모르고 죽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결코 시간이 많지 않다.

박봉규 건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