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우 김인권, 아버지가 되기 위해 약을 팔다

김동민 기자
입력일 2015-04-14 16:43 수정일 2015-05-29 16:51 발행일 2015-04-14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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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 취하는 김인권<YONHAP NO-1164>
김인권 (사진=연합)

김인권과 박철민의 이름을 듣고 큰 웃음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다는 실망할도 수 있다. 두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는 ‘약장수(감독 조치언)’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진지하다.

가족 부양이라는 가장의 몫을 다하기 위해 할머니들에게 효(孝)를 파는 일범(김인권)의 생존기는 눈물이 날 만큼 처절하다.

“빵 터지는 영화는 아니예요.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본주위 사회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은 사라진 지 오래죠. 영화에서 웃고 장난치는 부분도 있어요. 그렇지만 웃음이 나지 않는 개그예요. 코믹 배우들이 나와 웃기지만, 넋 놓고 즐길 수만은 없는 영화. 그게 바로 ‘약장수’죠.”

김인권은 예상치 못한 진지함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해운대’, ‘방가 방가’,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등 그동안 영화에서 만났던 김인권은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는 코믹배우의 대명사였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쩐지 불쌍한 표정에 동정이 가고, 배역에 따라 팔색조처럼 변하는 그의 연기는 재미있는 캐릭터와 만나 빛을 발휘했다. ‘왜 이렇게 진지하냐?’고 묻자 김인권은 “배우들이 원래 다 이렇다”며 가볍게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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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약장수’ (사진 제공=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원래 저 자신이 쑥스러움을 많이 타고 낯가림도 심해요. 그래서 일범하고 잘 맞았죠. 일범은 아픈 딸 병원비를 벌기 위해 할 수 없이 떴다방(할머니를 상대로 건강상품과 생필품을 파는 곳)에 가요.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니 주눅이 들어 말도 못하죠. 그런 일범이 저와 같아요. 좋아하는 것도 안 맞으면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는 같은 날(23일) 개봉하는 ‘어벤져스2’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김인권은 한국 정서가 있는 ‘들꽃’을 꺾어 공항에 가자는 박철민의 농담인 듯 농담 아닌 요청에 난색을 보였다.

“같은 영화지만 전혀 다른 작품이에요. 한쪽은 완벽한 상업영화고 다른 한쪽은 메시지가 담긴 작품성 있는 영화예요. ‘어벤져스2’에 대한 솔직한 심정은 그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극장에 못 들어가는 관객이 ‘뭐 볼까’ 고민하다 우리 영화도 보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배우로서 흥행에 대한 욕심이 없을 수 없다. 1000만관객이 넘은 ‘해운대’,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출연했지만 자신이 주연으로 참여했던 작품은 아쉽게도 흥행과 거리가 멀었다.

배우 김정태와 함께 출연했던 영화 ‘방가 방가’는 98만 관객 수를 기록했고, ‘전국노래자랑’도 100만을 넘지 못했다. 과거 ‘약장수’의 박철민과 함께 출연했던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는 23만에 그쳤다.

“일단은 흥행을 떠나 좋은 작품을 하고 싶어요. 일범처럼 딸 키우는 아빠로서 노력하는 모습이 담겨있고 나중에 돌아볼 때 기억이 되는 작품이 좋아요. 저는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무비스타가 아니잖아요. 대신 그들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배우죠. 정답은 없겠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저를 이해하주고 작품도 많이 봐주실 거라 믿어요.”

배우 김인권<YONHAP NO-1105>
영화 ‘약장수’에 일범으로 출연한 배우 김인권 (사진=연합)

떴다방에 가기 전 일범은 신문 구인광고를 보며 일자리를 알아본다. 전형적인 백수 가장의 옷차림에 신고 있는 운동화도 오래 신은 티가 물씬 풍긴다.

이 운동화는 2009년 개봉작 ‘해운대’ 때 신었던 것이다. 그는 이 신발을 신고 머리 위로 급습해오는 해일을 피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이 신발이 편해서 자주 신어요. 그러다 일범 캐릭터에 잘 맞는 것 같아 촬영장에 신고 갔더니 감독님이 좋아하셨어요. 나중에 화면으로 보니 신발 밑창도 떨어져 있더라고요. ‘내가 이런 걸 신고 다녔나’ 하고 반성했지만 그래도 이 신발이 일범의 처지를 잘 나타내는 소재로 쓰인 것 같아 만족해요.”

김인권은 ‘쎄씨봉’에 함께 출연한 정우와 영화 ‘히말라야(감독 이석훈)’를 촬영하고 있다. 지난겨울 국내 촬영을 마치고 얼마 전에는 네팔을 다녀왔다. 산전수전 다 겪은 김인권에게도 네팔은 힘든 여정이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사람이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지’였어요. 고산병에 시달리고 밤만 되면 내리는 눈 안개는 마치 하얀 악마 같았죠. 반면 좋았던 점도 있어요. 광활하게 펼쳐진 눈으로 덮인 산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져요. 서울에서 눈치 보며 사는 게 별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 그런 부분에서 심적으로 정화됐어요.”

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