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약장수' 떴다방 사장으로 돌아온 배우 박철민

김동민 기자
입력일 2015-04-13 15:03 수정일 2015-05-29 16:48 발행일 2015-04-13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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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피할 때 당당히 맞서는 영화가 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국내 팬들을 만나는 23일로 개봉일을 정한 ‘약장수(감독 조치언)’가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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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약장수’에 출연한 배우 박철민 (사진=김동민)

영화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할머니를 상대로 물건을 파는 ‘홍보관(일명 떴다방)’에 취직하는 일범(김인권)의 눈물겨운 생존기를 그렸다.

일범과 함께 영화를 이끌어 가는 이는 철중(박철민)이다. 홍보관을 운영하는 사장 철중은 돈이 되는 할머니 앞에서는 그 누구보다 재미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돈을 위해서라면 할머니 가락지까지 빼낼 정도로 사악하다.

“철중은 절대적인 악인은 아니예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악인이 된 캐릭터죠. 화가 나면서도 동시에 연민이 느껴지는 인물이에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카페에서 만난 배우 박철민은 밝았다.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깨부수고, 토르의 망치를 뺏어 오겠다”며 큰소리를 치다가도 “그 영화가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고 너스레다. 그리곤 “극장에 가면 ‘약장수’도 보고 오라”고 덧붙인다.

 

“신나게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영화가 좋지만 때로는 우리 현실을 이야기하는 작품도 필요해요.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나는 어디쯤 왔는지’. 우리 영화는 잠시 잊고 있던 어머니와 할머니를 떠올리는 계기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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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약장수’ (사진 제공=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건강식품과 생활용품을 파는 홍보관에 대한 것은 늘 소문뿐이었다. 영화는 소문에 가려진 실상을 있는 그대로 다룬다. 그곳에 가는 인물들을 통해 보는 홍보관은 일종의 놀이터다. 사회가 버리고, 가족도 외면하는 나이 든 노인을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몇 안되는 장소다. 

“속아서 사는 게 아니라 예뻐서 사는 거예요. 저희 어머니도 한때 그곳을 갔었어요. 자식들이 바빠서 잘 못하는 걸 홍보관 사람들이 해주거든요. 물건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팔고, 협박하는 등 부정적인 면이 많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회와 가족들의 무관심이 있어요. 따지고 보면 사기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인거죠.”

인격이 없는 박하사탕 하나도 박철민의 입속에 들어가면 상대를 괴롭히는 악랄한 소품으로 변신한다.

사탕으로 번지르하게 변한 기름진 입술 사이로 나오는 철중의 얄미운 대사는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일범을 더 비참하게 만든다. 체격에 비해 1.5배 큰 손으로 한 장씩 돈을 세던 철중은 급기야 돈다발로 일범의 뺨을 때리며 ‘돈을 가져오라’ 명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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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약장수’에서 일범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홍보관(떴다방)에서 일을 시작한다. 일범을 배려해주던 착한 사장 철중은 곧 본색을 드러내고 ‘일범’에게 정해진 몫을 할머니에게 팔라고 협박한다. (사진 제공=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그 부분은 일범에게 돈이 안 되면 할머니 반지라도 빼오게끔 자극을 줘야 하는 장면이었어요. 그래서 철중은 더 비열하고, 잔인해야 하죠. 마침 모니터 앞에 사탕이 있어서 먹으면서 했어요. 일부러 사탕을 어금니에 부딪치면서 소리까지 신경 썼던 기억이 나요.”

박철민은 상대 배우 김인권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두 사람은 지난 2012년 개봉한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에 같이 출연했다.

“인권이는 끊임없이 집중하는 배우예요. 코믹, 정극 구분 없이 대본을 읽고 또 읽죠. 한번은 우연히 그가 보던 너덜너덜 낡은 대본을 봤어요. 저는 대사만 외우면 안 보거든요. 그제야 ‘대본 행간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연기의 기본이 생각나더라고요. 인권이는 저를 가르친 기특한 녀석이에요.”

‘약장수’의 제작비는 4억원. 여기에 박철민의 출연료는 없다. 관객수 40만이 넘으면 10만명당 1000만원씩 받기로 계약되어 있지만 그마저도 사회 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다. 언론 시사회 후 ‘어벤져스2’보고 ‘약장수’도 봐 달라고 ‘제발’을 외치던 모습 뒤에 돈에 구애받지 않는 통 큰 씀씀이가 있다.

“다른 건 없어요. 드라마·상업영화를 하면서 연극하는 후배 술 사주고, 딸 학원 보내줄 정도는 돼요. ‘약장수’는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결과물이 좋아요. 그 속에 담긴 메시지도 현실과 잘 맞고요. 엄청난 돈을 버는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가 기부 약속한 건 없잖아요. 다 줄 테니까, 좀 더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면 좋겠어요.”

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