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 시니어] 성벽 앞 우뚝솟은 두 소나무… 400년 역사 흔적 온몸에

정철균 명예기자
입력일 2022-11-17 15:14 수정일 2022-11-17 15:15 발행일 2022-11-1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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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탐방> 강화도 초지진
초지진의나무
초지진의 두 소나무.

서울 퇴직 공무원 모임 ‘시우회’ 회원 50여 명은 민족 시련의 역사적 현장이었던 강화도 초지진에서 지난 11일 자연보호 및 산불방지 캠페인을 하며 조상의 얼을 배웠다.

초지진은 조선후기 서해안으로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효종 7년(1656)에 만든 요새 중의 하나로 수군 만호영이 안산의 초지량에 있었던 것에서 처음 비롯, 1666년에 초지량 령을 이곳으로 옮긴 뒤 진으로 승격되었다.

1871년 4월 23일 미국 로저스가 지휘하는 아세아 함대가 1230명의 병력으로 침공하여 450명의 육전대가 초지진에 상륙전을 감행, 화약 창고 등의 시설물이 파괴되었다.

1875년 일본이 조선을 무력으로 개항시키기 위하여 파견한 운요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의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져 인천, 원산, 부산항을 개항하게 되고, 우리의 주권을 상실하는 계기가 되는 역사의 아픈 상처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

현재의 초지진(초지돈대) 자리에 있는 두 소나무는 신미양·운요호의 침공 때 격전 중 날아온 적들의 포탄 파편과 총알에 의해 상처의 흔적을 간직한 역사의 산 증거 나무들이다. 격변의 시대 열강의 침입에 맞서 장렬하게 싸운 선조들의 기상을 간직한 채 400여 년 동안 초지돈대를 의연히 지키고 있다. 두 소나무는 굵은 줄기가 위로 솟구쳐 여러 갈래로 뻗은 모양으로 가지가 늘어지면서 삿갓 모양으로 쳐져 아름다운 수형이 있으며 생육상태가 양호하다. 수려한 모양의 희귀 노거수로서 생물학적 가치가 크며 역사 문화적 가치 또한 크다.

초지돈대는 1871년 신미양요 때 함포 공격으로 일부 파괴되었고 1875년 일본 운요호 사건 당시 조선 수비병과 일본군 사이의 포격전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그 뒤 허물어져 초지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으나 1973년 초지진을 복원했다.

정철균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