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 시니어] 지상낙원의 모순

손현석 명예기자
입력일 2022-11-03 15:48 수정일 2022-11-03 15:49 발행일 2022-11-0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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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손현석 명예기자
손현석 명예기자

영국의 작가이자 정치가인 토머스 모어는 그의 저서에서 유토피아란 말을 사용했다. 유토피아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를 말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이상향일 뿐이다.

동양에도 이와 비슷한 사상이 있다. 도연명이 말한 무릉도원이다. 무릉도원은 신선이 살았다는 전설적인 중국의 명승지를 일컫는 말로 이 또한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지상낙원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의 억만장자들은 자기들이 사는 곳을 유토피아와 무릉도원 같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지상낙원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곳은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선 밸리’(Sun Valley)라는 곳이다.

그들은 은퇴 후 이곳에서 여생을 즐기기 위해 현대화된 편의시설을 화려하고 완벽하게 갖춰놓았으며, 최신 의료시설을 건립하고, 최고의 실력을 지닌 의사들로 하여금 진료하게 했다.

그곳은 나이가 55세 이하인 사람은 들어올 수가 없어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이나 사고를 일으키는 청소년들도 없고, 자동차도 시속 25㎞ 이하의 속도로만 달려 소음도 없으며, 거리를 지저분하게 만드는 노점상이나 노숙자 그리고 범죄자도 전혀 없는 그야말로 지상낙원과 같은 곳이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일반 사람들보다 알츠하이머 발병률이 훨씬 더 높고, 평균수명은 더 낮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그러자 그곳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다시 자신이 살던 시끄러운 곳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와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우리나라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인 이시형 박사는 현지를 방문해 그 이유를 알아봤다. 그랬더니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이유가 너무나 편한 그들의 생활 습관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스트레스가 없고, 생활고에 대한 걱정이 없으며, 생활하는 데 어떤 특별한 변화도 없었다. 이런 긴장감 없는 삶이 오히려 삶의 의욕을 떨어뜨렸고, 치매를 유발하는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간혹 은퇴 후 전원생활을 즐기며, 조용하고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사는 그런 삶이 결코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지도 않을뿐더러 건강에도 별로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언제나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다.

손현석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