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 시니어] 축제의 계절

정운일 명예기자
입력일 2022-10-27 15:14 수정일 2022-10-27 15:15 발행일 2022-10-2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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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정운일 명예기자
정운일 명예기자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는 10월은 축제의 달로 전국에서 축제가 열린다고 신문과 방송에서 홍보가 요란하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축제가 연중 1000개가 넘는다고 하니 축제의 왕국이라 할 수 있다.

필자 어릴 때는 축제라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다. 지역에서 가을운동회가 요즈음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운동회 날은 학생들은 물론 지역주민 모두가 기다리던 날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교문 앞에 난전 벌여 학생들이 몰려들고, 주민들은 천막치고 가마솥을 걸어 음식 만들고 시끌벅적했다. 사람들이 많아 트랙 밖에 말뚝을 박고 새끼 줄 쳐서 안에는 금지구역이다. 다른 지역 사람들도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어 운동장을 지나가려면 사람들 때문에 매우 힘들었다. 자리가 비좁아 앉을 틈이 없어 옥상과 나무 위에서 구경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요즈음 지자체에서 우후죽순으로 축제가 열리고 있다. 축제를 살펴보면 각종 수산물, 축산물, 농산물, 꽃 축제, 그밖에 지평선, 해맞이, 불꽃놀이, 동장군 축제 등이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기호와 호기심에 따라 축제도 다양하게 변해가고 있다. 다른 지자체에도 경쟁적으로 지역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축제를 무리하게 추진하여 비난을 받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현장에 가보면 먹거리, 특산물 판매, 노래자랑, 부스에서 체험학습하기 등 다른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것과 비슷한 행사로 지역 특색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쉽다. 그래서 행사장을 한 바퀴 돌면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지역특산물을 사고 점심 먹고 돌아오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옛날 운동회는 지역의 유일한 축제로 주민들 관심이 대단했다. 바쁜 농사철이지만 약속이나 한 듯 하루를 쉬는 날로 정하고 있다. 꼭 할 일이 있어도 미리 하거나 운동회 끝난 뒤로 미룬다. 운동회 날이 되면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가족 중에서 한 사람이 새벽 일찍 학교에 나가 가마니를 깔아놓고 자리를 잡아야 경기를 편하게 볼 수 있다.

일찍부터 확성기를 크게 틀어 동요가 마을까지 들려온다. 운동회 날이니 빨리 학교에 오라고 부르는 소리이다. 마을 사람들은 동요를 들으며 학교로 모여든다.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하늘하늘 미소 지으며 반갑게 맞아준다. 오곡이 황금물결을 이루고, 논 가운데 서 있는 허수아비가 손짓하며 반겨 준다.

인기 있는 종목으로 현대·고전무용 손님 찾기, 탑 쌓기 짝체조 차전놀이 놋다리밟기가 있다. 어른들은 부락(마을) 대항 계주, 줄다리기, 마라톤을 했다. 상품으로 학생은 연필과 공책, 어른은 삽, 무쇠솥, 양동이, 주전자, 세숫대야, 비누, 수건 등 생활용품이 대부분이다. 당시에는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라 자랑거리였다.

가정에서도 운동회 준비를 며칠 전부터 시작한다. 고구마를 찌고, 밤과 콩 땅콩도 찌고 떡도 만든다. 장날에 재료 구입하여 음식을 만들어 힘이 센 형이 지게에 지고 간다.

필자는 여러 축제에 참여해 보았지만 어릴 때 운동회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쉽기만 하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 이장님은 쌀 몇 되씩 찬조를 받아 적은 돈으로 운동회를 했지만 흥미진진했다. 요즈음 축제는 가시적으로 많은 돈을 들여 요란스럽지만 가보면 볼거리가 없어 운동회가 그리워진다.

축제를 하는 것은 주민들의 문화 수준이 높아지고 마음이 풍요로워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화천 산천어축제처럼 지역 특성을 살려서 참여자가 즐겁고 보람을 느끼고, 볼거리 먹을거리가 마음속에 오래 기억되는 실속있는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정운일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