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 시니어] 암과 생로병사

임병량 명예기자
입력일 2022-09-15 11:09 수정일 2022-09-15 11:11 발행일 2022-09-16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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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임병량 명예기자
임병량 명예기자

마지막 병문안을 갔을 때 그녀의 몸은 삭정이가 되어 있었다. 작은 바람에도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 후 40일 만에 운명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의지와 열정이 강해 쉽게 털고 일어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암 앞에서 무기력했다.

고인은 나와 동갑이다. 그녀는 운동신경이 뛰어나 어떤 종목에도 쉽게 적응했다. 복지관에서 하는 탁구나 배드민턴 대회 때마다 대표선수로 선발되어 메달을 독식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녀의 노래 솜씨 또한 프로다. 노래자랑에 나가면 대회 상품 중 하나는 그녀의 몫이다. 운동 한 가지만 잘해도 부럽다고 하는 데 노래까지 잘하니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질 몸매는 건강의 상징이었다. 특히 그녀의 구성진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면 관중들은 절로 장단을 맞추면서 어깨춤을 췄다. 하지만, 이젠 분위기 몰이꾼이었던 그녀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는 재능은 안타까울 뿐이다. 고인과의 고운 추억이 빛바랜 사진으로 남았다.

그녀의 활동무대가 없어져 버린 것은 순전히 코로나19 때문이었다. 복지관과 체육관이 문을 닫는 순간 갈 곳을 잃었다. 그는 가끔 산행을 했으나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일상은 동료들과 함께 경기를 즐기면서 마음껏 소리 지르고 자신의 기량을 뽐내는 일이었다. 코로나19 여파가 길어질 수록 그녀의 하루는 스트레스만 쌓였다.

이런 일이 어찌 그녀 혼자만의 일이겠는가. 비대면 시대를 살아가면서 독서와 글쓰기에 몰입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하루는 그녀가 입맛이 없어 음식을 먹지 않아도 항상 배가 부르다고 하소연했다. 병원 진찰 결과 난소암 진단을 받았다. 오진이길 기대하면서 몇 군데 병원을 찾아다니며 반복 검사받았으나 병명은 바뀌지 않았다.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가 암이라는 사실은 상식이다. 하지만, 교통사고나 심장마비보다 행복한 죽음이다. 암은 병에 걸렸다고 해서 바로 죽는 게 아니다.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생각의 기간이 있다. 암에 걸리고 나서 여행을 즐기며 가족 사랑과 일상의 기쁨을 알게 됐다는 사람도 있다. 자기관리를 잘하고 올바른 생활 습관으로 오히려 건강을 되찾은 사람도 있다. 암에 걸렸다고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영동세브란스 병원 암센터 소장 이희대(1952~2013) 박사는 암 전문의로서 30여 년 동안 의료 활동을 했다. 그는 2003년 대장암 2기 진단을 받고 7년 동안 11번이나 암이 재발했다. 보통 사람은 한두 번 재발하면 사망으로 이어지지만, 본인은 열 번 이상 재발하여 투병생활을 이어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녀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거울삼아 본격적인 항암 치료를 위해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딸집 옆으로 이사를 했다. 자식 둔 부모는 아들보다 딸이 더 가깝다. 딸이 둘이면 금메달이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암은 내 눈에 보이지 않고, 아무 증상도 없이 찾아왔다. 암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항암치료가 힘들었다. 그것은 면역력을 파괴하고 자연수명까지 단축한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다”고 강한 집념을 보였다. 그런데도 1년 6개월의 투병 생활은 암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독한 약이 수명을 단축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생각이다.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는 말이 뇌리를 맴돌았다.

임병량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