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 시니어] 내 마음 속 비자금

김충수 명예기자
입력일 2022-08-11 13:54 수정일 2022-08-11 13:56 발행일 2022-08-12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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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수 명예기자

나는 허리통증이 심해지면 서울근교에 있는 참숯 가마를 자주 찾곤 했다. 하루는 서너 명의 아주머니 부대가 들어와서 쉴 새 없이 잡담을 나누었다. “이번에 우리 집 양반이 명퇴하게 생겼는데 글쎄 나보고 비자금은 얼마나 준비해 두었냐고 묻지 뭐야 곧이곧대로 말하면 퇴직하고 나서 곧바로 사업하겠다고 그 돈 내놓으라고 할 것 같아서 적당히 둘려댔지 뭐야.” “얼마 전에 투자한 땅은 누구 이름으로 했지?” “누군 누구야 모두 내명의로 했지.” “자기 남편은 빈 깡통이네.” 하면서 왁자지껄 큰 소리로 웃어댔다. 남편이 가져다주는 월급으로 생활하고 알뜰살뜰 절약하고 그 돈의 일부라도 저축해서 남편이 정년퇴직하면 그렇게 모아놓은 자금으로 알콩달콩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었을 텐데 갑자기 남편들이 조기퇴직을 한다고 하니 아주머니들의 비명 같은 소리가 숯가마를 훨훨 태우고 있는 것이다. 쌓아두고 모아 둔 게 없는 누군가에게 꿈같은 소리이고 누군가에는 한숨 소리였다.

“자기는 이번에 주식투자로 번 돈은 어디에 꼬불쳐두었는데?” “그야 그 돈은 당연히 내 비자금 통장으로 들어갔지.” “자기는 우리 중에서 제일 난 사람이여, 우리 중에서 누가 자기 명의로 된 비자금 통장을 굴리고 있는가 말이여? 나는 내 남편이 물어보면 뭐라 대답을 해야 하는지 갑자기 고민이 되는구먼.” “고민할 게 뭐 있겠는가? 당신이 내 비자금이잖아요. 그래서 나는 숨겨둔 비자금이 한 푼도 없어요. 나는 당신만 있으면 되요라고 큰 소리쳐봐”하면서 또다시 한바탕 깔깔깔 웃는다. 흘린 땀이 축축하여 이리저리 뒤척거리면서도 나는 가족들에게 비자금 역할을 톡톡히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비자금은커녕 비상금 한 푼도 없기에 지금부터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차곡차곡 잘 쌓아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당신은 나의 비자금’ 이란 노래가 최근 출시되었다. 곡이 흥겹고 가사도 톡톡 뛰어서 그 노래가 내 맘속에 꼭 박혔다.

“누가 볼까 허리춤에 돌돌 말아 묶어놓고 누가 볼까 내 맘속에 겹겹 말아 포개놓네… 아아 당신은 내 사랑 당신은 나의 비자금 당신은 내 사랑지갑… 당신은 나의비자금”

가족과 부대끼면 알콩달콩 살아가면서 사랑을 쌓고 이웃 사람들의 마음속에 묵직한 금은보화를 묻어둔다면. 내가 급할 땐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비상금이 될 것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으니 베풀면 베푼 대로 다시 돌아온다. 그것은 곧 사랑인 것이다.

비자금을 말하면 대부분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떠오른다고 하지만 부정 속에서 긍정의 씨앗인 비상금을 찾아내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김충수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