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고객의 마음 사로잡는 마케팅

김시래 성균관대 겸임교수 겸 롯데 자이언츠 마케팅 자문위원
입력일 2022-04-25 14:03 수정일 2022-05-26 14:26 발행일 2022-04-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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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 성균관대 겸임교수 겸 롯데 자이언츠 마케팅 자문위원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의 마케팅 자문을 맡아 부산을 오간다. 부산사직구장의 개막전을 보고 돌아오는 날의 열차편은 역방향이었다. 서울로 끌려가는듯 어두운 부산역이 멀어져갔다. 순방향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풍경이 창가로 펼쳐졌다. 서울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산과 이별하는 느낌이었다.

환경이 바뀌면 시선이 바뀌고 새로운 관점이 생겨난다. 비즈니스맨이 낯설음을 찾는 것은 그 때문이다. 관점의 종착역은 자신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이다. 물건 파는 주인의 마음을 담아내야 할 광고 문구는 더더욱 그렇다. 자신의 철학이나 입장을 앞세운다면 아마추어다. 자칫 삼천포로 빠지기도 한다.

금융회사 광고를 맡을 때다. 회장이 직접 고객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우리는 그 회사의 재무건전성이 개선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로 했다. “체질개선, BIS비율 12.03%”이란 최근 성과를 대문짝 만하게 헤드라인에 올렸다. 그리고 강남 요지에 위풍당당하게 솟아 있는 사옥을 배경 이미지로 사용했다.

당당한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서두를 꺼낼 때부터 회장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광고를 꺼내 들자 그의 얼굴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실적이 강조된 헤드라인과 자화자찬의 비주얼은 그의 의도를 정반대로 비켜나갔다.

그가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고객들이 자신을 투자의 귀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강점이지만 반대로 불안감을 가진 고객들이 늘어나서 장기거래가 가능한 우량고객이 부족하다고 했다. 따라서 신뢰와 믿음을 줄 수 있는 금융회사의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몇일 후 장바구니를 담은 자전거를 탄 주부가 밝게 웃는 모습을 배경으로 “살림이 조금 피었다고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지 않겠습니다. 밤 밝혀 일하는 당신을 위해 환한 웃음으로 집안을 밝히겠습니다. 새 옷으로 옷장을 채우는 대신 희망으로 통장을 채우겠습니다. 금융경쟁력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합니다.”라는 카피를 채택한 광고를 제시했다. 그는 만족했다. 그의 속내는 ‘우리는 잘 나간다’가 아니라 ‘우리는 착하다’는 이미지였다.

상대의 입장에 서면 화법도 달라진다. ‘단계별 접근법’을 주장한다고 하자. 그런데 상대는 골프광이다. 방법이 보이는가? “파 5홀에서 티샷이 러프에 빠졌을 경우 우드로 핀을 직접 공략하는 방법과 숏 아이언으로 페어웨이로 탈출한 뒤 핀을 공략하는 방법 중 어떤 것이 더 합리적인 방법일까요?” 라고 물어야 한다. 광고(廣告)가 아니라 적고(的告)의 시대다. 상대는 누구인가? 그들의 직책, 나이, 지위, 성별은 무엇인가? 전문가인가, 비전문가인가? 사무직인가, 기술직인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인가? 음악 감상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CEO에게 직설과 강공의 문장은 먹혀들 리 없다. 유교적인 생활 습관을 가진 사람에게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메시지는 곤란하다.

롯데 자이언츠의 새로운 슬로건은 ‘Win the Moment’(순간에 전부를)이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구단에 기대하는 부산 팬들의 정신을 담았다. 매순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선수단의 결의다. 게임의 승리보다 게임의 즐거움을 안겨 드리겠다는 구단의 약속이다. 열정적인 노력은 의미 있는 결실로 반드시 연결된다는 믿음은 모두의 좌표가 되야 한다.

김시래 성균관대 겸임교수 겸 롯데 자이언츠 마케팅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