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코로나 시대 가족의 의미

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
입력일 2022-03-23 14:17 수정일 2022-04-24 23:32 발행일 2022-03-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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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다.” 세기의 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제목의 주인공인 안나 카레니나는 미모의 유부녀로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아이도 낳지만, 종국엔 진한 감정의 굴곡을 겪어내며 자살이라는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된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을 통해서 당시의 모순적 사회상과 인간의 격렬하고 다양한 감정변화, 진정한 삶의 가치 등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멋진 작품이다.

우리나라 단편 소설 중에 김영하 작가의 ‘오빠가 돌아왔다’라는 작품이 있다. 술주정뱅이 백수 아빠, 건설 현장 직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함바집에서 일하는 엄마, 열여섯에 가출한 오빠, 그리고 주인공은 중학교 1학년짜리 여자아이다. 소설은 이 어린 여학생의 시선을 통해 전개된다. 열여섯에 가출했던 오빠는 사 년 만에 미성년인 여자애와 함께 돌아와 살림을 차린다. 아빠는 권위를 세워 볼 요량으로 오빠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르지만, 오히려 오빠에게 두들겨 맞고 뒷방으로 밀려나 버리고, 돈을 버는 오빠가 집안의 가장이 된다. ‘동물의 왕국’에서 무리에서 밀려난 수컷 사자가 떠오른다. 

‘오빠가 돌아왔다’라는 작품은 대체로 우리가 생각하는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평범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오히려 톨스토이가 말한 불행한 가족, 제각각 나름의 이유로 불행한 가족 중 하나로 보인다. 물론 작가가 어떤 의도로 글을 썼든 독자는 원하는 대로 읽고 해석할 수 있을뿐더러, 평범에 대한 정의가 세월과 처한 상황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기에 단언할 수는 없다. 속된 표현을 빌리자면, 콩가루 집안이라고 부를 만한 내용이다. 힘과 돈이 가족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물론 모범 가정이 어떠한 가정인가에  대한 정답이 없기에 어쩌면 모양새만 조금씩 다른 지금 우리네 중 누군가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가 급격히 변화해 가면서 가족의 의미도 가족의 형태도 빠른 속도로 변화했다. 행복한 가족의 형태를 획일화된 표현으로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가족이든 행복한 가족의 근간에는 가족 구성원에 대한 서로의 신뢰와 사랑이 기본일 것이다. 

코로나가 가져다준 다양한 여파로 어쩌면 이러한 가족의 변화가 더욱 가속화되었을 수도 있겠다. 오랜 거리두기로 함께 있는 시간이 늘었을 것이고, 코로나라는 전 세계적 어려움을 겪어내며 한편 서로에 대한 애정도 깊어지고 이해의 폭도 넓어졌을 수 있다. 가족 간의 따뜻한 대화가 늘어 나고, 가족의 소중함을 좀 더 깊이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면, 나름 코로나 시대의 작은 행복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주요 민족 중 하나인 코사족(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도 코사족이었다고 한다)에게는 다음과 같은 격언이 있다고 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어떤 복병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인생이라는 긴 여정, 조금 늦더라도 여럿이 함께 간다면 좀 더 먼 길을 여유 있게 웃으며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생이라는 힘들고 먼 길, 가족이든 친구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자.

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