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왕권이냐 신권이냐

박봉규 2022 세계가스총회 조직위원장
입력일 2022-03-20 14:58 수정일 2022-04-08 16:21 발행일 2022-03-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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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2022 세계가스총회 조직위원장

조선이 건국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광화문 네거리에서는 칼바람이 불었다. 이방원이 주도해 세자와 세자의 후견인 격이었던 정도전을 죽인 1차 왕자의 난이다. 이 쿠데타는 겉으로 보기에는 세자 책봉에 불만을 품은 이방원이 일으킨 정변이요 정치 세력 간의 갈등이었지만 그 뒤에는 국가경영을 둘러싼 철학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국가운영의 주체가 왕이냐 신하냐가 쟁점이다.

신권을 강조한 정도전의 생각은 이렇다. 왕조 국가에서 왕은 가장 중요한 존재이기는 하다. 그러나 자식에게 세습되는 왕의 자질이 항상 우수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므로 왕은 상징적으로만 통치하고, 능력이 검증된 뛰어난 신하가 재상이 되어 구체적인 국가경영을 담당하는 것이 최상이다. 지금의 의원내각제에 유사하다.

이방원의 생각은 달랐다. 조선은 이씨의 나라이고 절대적인 왕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어수선한 개국초기에는 말할 것도 없다. 강력한 대통령 중심의 국가운영이다. 신하 중심 정치는 말을 그럴 듯하지만 신하의 능력을 어이 검증할 것이며 또 힘센 신하가 왕을 겁박하거나 심지어 왕을 몰아내는 상황이 생기면 어찌할 것이냐는 것이다. 조선 자체도 유약한 고려의 왕을 몰아내고 세운 것이 아닌가?

누구 생각이 더 타당한 것일까는 당연히 시대적 상황이나 왕 또는 재상의 자질과 품성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도전이 패하고 이방원이 왕이 되면서 조선은 왕권중심 국가로 출발했으나 그 후 500년은 왕권과 신권 사이에서 충돌과 타협 그리고 상호견제로 통치를 이어나갔다.

우리나라는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제는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국론을 통일하고 국력을 결집시키는 데는 강점이 있다. 하지만 자칫 대통령 자질이나 철학에 따라 국가 운명이 좌우되거나 견제력 없는 권력행사로 본인도 불행해지는 과오를 저지를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는 과거 우리 헌정사가 설명해 준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권력구조에 관한 다양한 개헌안도 제시되고 있다. 근원적인 해결책일 수 있겠지만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다행히 우리 헌법은 헌법 개정이 없더라도 운용의 묘만 살리면 제왕적 대통령의 단점을 극복하고 내각제 요소를 가미해 협치를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이미 마련해 두고 있다. 정도전이 주장한 ‘재상’에 해당하는 국무총리의 권한과 역할이 상당한 정도로 명기되어 있다. 문제는 실질이다. 언제부터인가 총리는 실권 없는 대독총리로 전락했고, 장관임명제청권은 어디까지나 규정일 뿐 대통령이 결심한 내용을 형식적으로 제청하는 것이지 독자적으로 행사된 적은 드물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대적 과제는 개발연대에서 필요로 했던 일사분란한 추진력보다는 다양한 이슈에 대한 폭넓은 견해의 수렴을 통한 설득과 타협의 정치다. 이번 대선결과 또한 국민들이 대통령의 일방독주를 멈추라는 신호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제도개선에 앞서 헌법정신을 제대로 살려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준 것이다. 제도 미비를 탓하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현행 헌법의 틀 속에서 먼저 성과를 낸 후 이를 바탕으로 제도자체를 손보는 것도 방법이다.

박봉규 2022 세계가스총회 조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