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날 아침에 많은 세배를 받으며 명절 인사와 조문객 인사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3남 1녀와 손자들까지 20명이 시차적으로 조부모 집을 방문, 세배를 받고 나 나름대로 의례적인 덕담 인사를 했다.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라고.
손자들에게는 “주어진 환경과 위치에서 열심히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가야할 길이 보이고 희망이 생긴다” 고 성실한 생활의 삶을 주문했다.
장남 장손자는 S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한 직장인으로, 차남의 장손녀는 E대학 졸업 후 명문사립고 영어 선생으로, 삼남의 장손자는 군복무(방위병)로, 차손자는 골프고등학교 1학년생으로 학교장배 시합에서 우승과 명지대학교 총장배 시합에서 3등 성적으로 골프인 꿈을 키우는 등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1959년 보릿고개를 겪으며 고등학교 시절 수업료를 면제 받기 위해 핸드볼 선수로 제42회 전국체전에 도 대표로 출전하였고 군 입대한 후에는 군 의무단 축구 선수로 우승하면 3박 4일 포상휴가 받고 귀향해 부모님을 뵙고 농사일 도와 드리는 일이 희망이었다. 이제는 경진년생 83세 나이로 불혹을 두 번이나 넘긴 나이다.
임인년 설날 전 서울시의회 부의장이었던 L선배님이 10시경 전화를 걸어 “새해 복많이 받고 건강하자” 는 인사말을 하셔서 당황하게 되었고 황송한 마음이 들었다.
문자 메시지로 새해 인사 글을 주고받은 지인들은 사회 현역들이었기 때문에 퇴역 고령이신 선배 어르신들께 새해 인사해야겠다는 생각에 몇분에게 전화 걸고 나니 더 이상 전화 할 곳이 없었다.
한때 좋은 인연이었던 선배 어르신들이 꽤나 있는 줄 알았는데 전화 받는 분이 고마워하고 반가워하실 분, 옛날 좋은 추억이 생각나실 분이 다섯 분이 안 되었다.
사람은 환경이 바뀌면서 이해관계가 바뀌고 또 여건이 바뀌는 대로 생각도 바꿨다지만 인생사는 복잡 미묘한 것인가 보다. 스스로 반성과 지난 일을 생각하게 되어 내 자신이 갈수록 무심한 사람이었던가? 싶다. ‘인생무상’ 이란 말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도 나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코로나가 정상 회복되고 난 후 만약 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나를 생각하고 슬픈 마음에서 추모의 조문 올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친인척을 빼고 나면….
삼가 조문객은 망인의 손님이 아니고 자녀들 손님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친인척 자녀들 조문객 이외 망인인 나의 조문객에 대하여서는 조의금의 배액을 장례 후 적당한 선물로 답례하도록 유언과 공증을 하고 또 일정금액 통장을 만들어 자녀들 부담 없게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노후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임인년 설날이었다.
주변에 덕담을 더 해야 하고 가능한 베풀고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보살피고 도움을 주고 계속 인간관계를 유지 발전시켜야 축복 받는 죽음이 될 것이란 생각이 또 들게 하는 설날이었다.
전태권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