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칼럼] 젊은 퇴직 vs. 엉킨 노후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22-02-06 16:11 수정일 2022-04-24 23:53 발행일 2022-02-07 19면
인쇄아이콘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파이어족이 화제다.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를 실현한 자유인을 의미한다. 대세까지는 아니나 새로운 생애모형으로 부각된다. 투자성과든 압박저축이든 노후자금을 빨리 확보해 늦어도 40대에는 퇴사하는 구조다. 독립금액은 생각보다 많지않다. 거액 없이도 마음먹기에 따라 노후생활이 가능하단 점에서 설득력이 높다. 큰돈의 허들만 벗어던지면 누구든 실행할 수 있어서다. 사례는 많다. 후딱 벌어 빨리 벗어났다는 부러움의 확산배경이다. 월급쟁이라면 끄덕일 수밖에 없다.

월급에 연연하지 않는 조기퇴직은 로망이다. 큰돈을 벌기 어렵거니와 벌자고 아등바등하지 않겠다는 인식변화도 한몫했다. 때문에 적당한 수준일 때 본인다움을 찾아 얽매인 삶에서 벗어나자는 차원이다. 다만 조급할 필요는 없다. ±50세면 퇴사이슈는 현실화된다. 더 일하고 싶어도 떠나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독립퇴사가 자발적이라면, 퇴직압박은 강제적이다. 정년제도가 있지만, 절대다수는 진즉 그만둔다. 일부를 빼면 50대 초중반이면 사실상 회사잔존은 힘들다. 결국 둘은 ‘젊은 퇴직’이란 게 공통적이다. 길어진 평균수명을 보면 파이어족처럼 조기퇴사가 맞다.  

조만간 한국사회는 ±50세의 젊은 퇴직이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베이비부머(1955~75년생)의 피크집단이 조기퇴사의 잠재연령대에 진입한다. 연간 100만 출생을 기록한 1970~71년생이 벌써 50세를 넘겼다. 그만뒀거나 그만둘 타이밍이 곧이다. 운좋게 버틴 이전세대도 옷 벗을 날이 눈앞이다. 요컨대 대량퇴직은 예고됐다. 누구든 ‘젊은 퇴직’은 닥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슈란 얘기다. 파이어족이 아닌 봉급쟁이라면 공통화두다. 해서 ‘젊은 퇴직’은 부러움이 아닌 절박함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젊은 퇴직’은 ‘엉킨 노후’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파이어족도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거액축적이 아닌한 시간을 이겨낼 방책은 없다. 경제독립을 통한 유유자적이 반드시 삶을 즐겁게 만들어주지도 않는다. 일은 소득만이 아닌 수많은 연계의미를 갖는 까닭이다. 마냥 노는 것도 힘들다는 얘기다. 중요한 건 퇴사 그 다음이다. 그만두긴 쉬워도 후회하지 않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철저한 준비와 정밀한 계획이 중요하다. ‘엉킨 노후’의 함정은 의외로 많다. 무대책의 쫓기는 듯한 ‘젊은 퇴직’이면 더 그렇다. 언젠가 닥칠 수밖에 없다면 파이어족의 능동성·계획성을 벤치마킹하는 게 좋다. 

아직 한국사회는 ‘젊은 퇴직’을 흡수하지 못한다. ‘엉킨 노후’를 낳는 시대현상이나 각자도생에 떠맡기는 형태다. 기업은 고용 없는 성장에 익숙한데다 ‘고용=비용’을 떠올리니 구조조정은 줄지 않는다. 정년은퇴는 옛말이다. 그럼에도 파이어족과 달리 금전자유는 역부족이라 생계전선에 내몰린다. 개별창업이 실업양산의 안전망으로 기능하는 웃픈 현실이 펼쳐진다. 이과든 문과든, 젊든 늙든 끝은 치킨집 창업이란 말이 유행하는 배경이다. 그리고 또 그 끝은 빈곤노후에 닿는다. ‘젊은 퇴직’을 받아줄 시스템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때다. 최소한 ‘엉킨 노후’를 피하도록 기반조성이 시급하다. 퇴직이 끝이 아닌 시작일 수 있도록 연착륙 기술을 고도화하자는 말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