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시니어] 고령 운전자 문제 해결의 ‘선제조건’

손현석 명예기자
입력일 2021-12-23 14:05 수정일 2021-12-23 14:05 발행일 2021-12-2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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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석기자
손현석 명예기자

오래전 젊었을 때의 일이다. 운전을 오래 했지만 조심하는 게 습관처럼 몸에 배어 정속 운전을 하다 보니, 같이 탄 사람이 답답함을 느꼈는지 나에게 ‘노인네 운전’을 한다고 놀려댔다.

당시만 해도 ‘노인네 운전을 한다’는 말은 안전운전과 직결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노인네들의 운전은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원인으로 취급받고 있다.

경찰청은 오는 2025년부터 고령 운전자에 대한 조건부 면허제도 도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조건부 면허제도란 VR 테스트를 통해서 고령 운전자의 운전 능력에 따라 ‘야간 운전 제한’ ‘장거리 운전 제한’ ‘고속도로 운전 제한’ 같은 제한을 두겠다는 것이다.

경찰청의 이런 발표에 대해 “고령 운전자에 대한 차별이다”며 반발하는 65세 이상 되는 고령자들의 목소리가 크다. 백세시대에 접어든 마당에 나이가 많아도 젊게 사는 노인이 얼마나 많은데 고령자들에 대해서만 조건부 면허제도를 도입하는 건 노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운전면허 소지자들이 정기적으로 받는 적성검사도 고령자들에 대해서만 차별을 하고 있다. 현재 운전면허를 소지한 65세 이상 고령자는 5년마다 적성검사를 한다. 하지만 75세 이상 고령자의 경우에는 3년마다 적성검사와 함께 교통안전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경찰청이 이처럼 고령 운전자 조건부 면허제도를 도입하고, 적성검사 기간을 앞당기는 것은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운전면허 소지자 중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지난 2008년 100만여 명(4.2%)이던 것이 2019년 333만여 명(10.2%)으로 증가했다. 또한,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 건수는 2014년 2만 275건이던 것이 2015년 2만 3063건, 2016년 2만 4429건, 2017년 2만 6713건, 2018년 3만 12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교통 사망사고 중 고령자가 낸 사고 비율 역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무작정 고령자들의 운전면허를 막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핵가족 시대에 노인 부부만 사는 집에서 고령자 운전을 제한하면 꼼짝 말고 집에만 있으라는 건데 요즘 같은 세상에서 차량 운행이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실제로 도로교통공단에서 고령 운전자들 대상으로 1인당 10만 원씩의 지원금을 지급하면서까지 운전면허 반납 지원 사업을 시행하면서 운전면허증을 반납한 고령자들이 많다. 하지만 교통 불편을 느껴 다시 원동기면허증을 취득해 오토바이 등을 운행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운전면허증을 원동기 면허증과 바꾼 셈이며, 이 때문에 오히려 더 위험한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경찰청이 고령 운전자에 대한 조건부 면허제도를 실시하고, 도로교통공단에서 고령자들의 운전면허 반납 지원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선행 조건은 고령자들이 운전하지 않고도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교통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운전하지 않고도 교통 불편을 해소할 수만 있다면 힘들게 운전면허증을 따려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굳이 운전면허증을 갖고 있으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손현석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