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적어도 왕은 그래서는 안 되었다

박봉규 2022 세계가스총회 조직위원장
입력일 2021-12-15 13:40 수정일 2022-05-22 18:26 발행일 2021-12-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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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2022 세계가스총회 조직위원장

즉위당시 광해군에게는 할 일이 많았다. 안으로는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민생을 회복시키고, 밖으로는 명·청 교체기에 외교정책을 재정립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런 시대적 과제에 기민하고 훌륭하게 대처했다. 대동법을 시행해 공물의 폐해를 바로 잡고 실리외교로 명과 청의 요구를 적절히 조율해 나갔다.

그러나 그는 ‘정치’에 실패했다. 당파 간의 싸움이 극심한 상황에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굳히고 나라 일을 추진하기 위해선 사대부 사회의 통합이 절실했다. 위민이나 목민의 개념은 있었지만 오늘날의 ‘민주’ 개념은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양반계층의 통합이 바로 오늘날의 국민통합에 해당한다.

갈등이 극심할수록 왕은 이를 조율하고 통합해 신하들끼리 상호 견제하면서도 백성을 위해 일하게 하는 운용의 묘를 찾았어야 했다. 한 당파의 권력독점을 허용해선 안 되었다. 그러나 그는 소수정파였던 대북파에 매달려 그들을 편애하고 상대당파를 배척하며 스스로 고립되어 갔다.

왕과 사대부들의 이해관계는 국가를 경영하는 지배계층이라는 면에서는 같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결코 같을 수 없다. 신하들 입장에서는 타 정파를 배척할수록, 심지어는 자기정파 내에서도 상대를 쳐낼수록 자기 권한과 역할은 강해지기 마련이다. 모든 권력은 독점추구의 속성이 있다. 겉으로는 대의와 국익을 내세우지만 자기 이익과 안위를 생각하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다. 자신을 버리고 오로지 공익에만 헌신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존경하는 이유이다. 그만큼 어렵다.

정치의 계절을 맞아 각 후보의 캠프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대통령이 되려면 실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들 중에는 국가 경영에 대한 철학과 경륜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한 정치인의 평처럼 ‘이익과 기회를 찾아 몰려든 파리 떼’ 같은 자들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왕과 신하가 추구하는 목표나 방향이 다른 것처럼 대통령후보와 캠프의 이해관계 또한 항상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당선이라는 목표는 같지만 한 꺼풀만 속을 파고 들어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여론조사 결과가 유리하게 나오고 당선 가능성이 커질수록 칸막이를 치며 ‘내 몫’을 더 확보하려 한다. 상대방과 그 정책을 포용하기는커녕 자기파 안에서도 자리다툼과 밀어내기가 횡행한다. 공식조직보다 캠프 중심으로 선거전을 치른 결과의 후유증을 보면서도 시정되지 않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특정 당파나 그에 속한 사람들은 좁은 안목과 자기이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더라도 대통령 또는 후보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의 인간적 섭섭함을 뛰어넘고 정책의 차이를 한 용광로에 넣어 용해시키는 것 또한 후보자 몫이다. 왕자의 난을 거쳐 집권한 태종은 왕이 된 후 공신들을 억압하고 새로운 피를 수혈하면서 세종의 태평성대를 준비했으나, 계유정난으로 집권한 세조는 공신들을 형제로 대우함으로써 통제받지 않는 공신집단의 불법행위로 백성들의 삶은 힘들어갔다.

공신이나 신하들의 이해관계에 포획되지 않고 반대파의 능력까지 국가경영에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도자의 자질이다. 독단, 독선, 독주의 국정운영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이를 제대로 파악하고 운용하지 못한 광해는 결국 인조반정에 의해 왕좌에서 쫓겨나고 실패한 왕으로 기록되고 말았다.

박봉규 2022 세계가스총회 조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