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정치는 ‘구호’일지라도 정책은 ‘현실’이어야!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
입력일 2021-12-12 15:06 수정일 2022-05-22 18:25 발행일 2021-12-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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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

다산 정약용이나 삼봉 정도전은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다산의 ‘1표2서(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심서)’나 삼봉의 조선경국전은 정치인의 정치서가 아니다. 정책서이면서 정치철학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두 정치인이 이렇게 세밀하고 현실적이며 구체적이고 명징(明徵)한 내용을 담은 서물(書物)을 유산으로 남겨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게 된 건 우리 사회의 행운이다. 그러나 그분들 개인사로 보면 ‘행운’일 수만은 없다.

두 분 다 정치인이었다가 전남 강진과 나주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곳 생활을 거치며 다산은 500여 권에 달하는 여유당전서를 집필했고 삼봉은 민초들의 삶 속에서 민본사상을 정립한다. 정치에서 강제 하차당한 ‘불행’으로 우리는 위대한 서물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오히려 그분들의 불행이 후손인 우리에게는 행운인 것이다.

정치의 계절답게 성장이니 공정이니, 기시감(旣視感)이 드는 구호가 난무한다. 정치행위의 속성이 그렇다 하더라도 구호가 정책으로 구현되지 못하면 메아리 없는 공허일 뿐이다. 그러나 정책으로 구현된 구호는 힘을 갖는다. 다산의 개혁이나 삼봉의 민본은 구체적 정책으로 현현(顯現)되었기에 평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좀 더 내밀히 들여다보면, 다산이나 삼봉은 유배과정을 통해 백성들의 구체적 삶을 함께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현실을 경험하면서 그 바탕에 터 잡아 정책을 다듬었던 것이다. 한양의 정치 현장이 아니라 척박한 촌구석의 유배지에서 말이다.

현실로 돌아와 보자. 집값 잡는다고 세금 왕창 올리자 잡으려던 집값에 되려 전가되고, 집 살 돈 틀어막으면 집값 떨어지겠지 했건만 전세금 못 올려줘 길거리에 나 앉을 상황을 만들질 않나, 부랴부랴 공급을 늘린다는 것이 원룸 수준이니 강남 집값하고 무슨 상관인가.

당장의 연명을 위해 돈을 구해야 하는 절박함 앞에 이자율 조금 낮추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평생 저축해 집하나 장만해 노년이 되어 은행에 대출받으러 갔더니 소득이 없어 안 된다기에 하는 수 없이 대부업체에서 고금리로 빌릴 수밖에 없게 되어 빚만 늘질 않나, 채무조정 받아 열심히 모두 상환했건만 과거 연체이력 때문에 정책금융상품 대상은 못 된다 한다.

현실에 기반하지 못한 정책은 비록 ‘배가 산으로 가는’ 최악의 경우는 아니라 하더라도 다양한 부작용을 가져온다. ‘현실’이란 시장만을 말하는 것도 아니요 현장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시장은 만능이니 시장의 기능에 맡기자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일 수도 있다. 현장에만 매몰되어서는 한 발짝도 내디디기 어렵다.

무릇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서는 현실을 제대로 살펴야 함이 기본이고 시행 후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꼼꼼한 대비는 물론 시행 후에도 언제든 수정·보완할 수 있다는 유연함을 가져야 할 것이며 시행경과에 대한 중간점검과 평가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본다.

한 가지 짚을 점은, 정책이 그 자체의 완결성을 위해 무리하게 성격이 다른 요소를 가져다 붙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금리의 수준으로 다루어야 할 저신용자 대상 시장과 그 조차 접근이 안 되는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불법 사금융시장은 성격이나 관여자가 차별적일 뿐 아니라 대책 또한 완전히 달리 접근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