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은퇴해도 서울에 살어리랏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기자
입력일 2021-12-02 14:12 수정일 2022-05-22 18:24 발행일 2021-12-03 19면
인쇄아이콘
2021103101001873900080341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세월은 화살처럼 재빠르다. 늙을수록 속도는 더 붙는다. 나이 50이 엊그제인데 환갑이 눈앞서 손짓한다. 허둥대면 70은 금방이다. 맘은 청년일지언정 몸은 늙음에 맞설 수 없다. 60갑자 한바퀴의 쉼표는 받아들이는 수뿐이다. 시나브로 은퇴이슈와 불가피하게 대면해야 한다. 은퇴설계란 말처럼 사전기획이 요구되는 배경이다. 우선고민은 ‘어디서 살까’로 요약된다. 정년은퇴에 자녀숙제까지 끝냈다면 도시잔류보다 전원생활을 떠올리는 욕구가 자연스럽다. 꿈꿔온 로망이면 더 그렇다.

단 신중은 이럴 때 강조된다. 늙어 거주공간을 바꾸는 카드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익숙함과 새로움을 확실히 비교한 후 결정해도 늦지 않다. 성향·지향별 가중치는 다르나, 현역시절과 달리 보유자원이 한정적이라 실패하면 뒤끝이 길다는 건 똑같다. 이사는 연쇄효과가 큰 선택이라 특히 그렇다. 재도전의 제한현실을 숙지하며 기회비용을 면밀히 따지는 게 필요하다.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맹목적 유행을 좇는 건 금물이다. 화면은 현실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는 법이다.

물론 초고령사회의 탈(脫)도시·향(向)시골 트렌드는 유력한 흐름 중 하나다. 빡빡한 도시인일수록 한적한 자연인의 갈망은 차고도 넘친다. 연(緣)이 있거나, 여유롭다면 시도해봄직한 대안이다. 잊었던 행복을 되찾았다는 사례도 많다. 회사인간·가족희생을 숙명처럼 여긴 베이비부머가 자기다움·내려놓기를 실현할 귀향·귀촌행렬을 이끄는 건 납득되는 현상이다. 단 모두가 마지막까지 웃는 건 아니다. 대개 시골 이사는 시간경과에 맞춰 ‘행복→갈등’으로 변질된다. 시골특유의 불편·불안·불만의 현실화다.

본인만은 예외라고 자신하면 곤란하다. 비극과 희극은 백짓장 차이다. 화면에 안 담긴 냉엄한 일상은 늙을수록 치명적인 한계로 다가선다. 가령 75세면 건강수명은 얼추 끝나고 이후는 유병노후로 들어선다. 즉 거동불편·의료한계·관리불능에 이웃갈등·교류제한·금전부족까지 겹치면 시골살이는 재앙에 가깝다. 메리트가 핸디캡으로 전환된다. 따라서 현재욕구와 미래변화까지 포괄한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아니면 언제든 손쉽게 되돌아올 출구전략이 필수불가결하다.

‘도시현역 vs 시골은퇴’의 이분법은 수정대상이다. 예전엔 맞아도 지금은 아니다. 되레 ‘도시=은퇴’의 정합성이 더 맞다. 도시공간의 기반경쟁력은 늙어 기력이 쇠할 때 빛을 발한다. 불행노후를 구성하는 빈곤·고립·질병의 세가지 딜레마를 버텨내는 힘은 정작 시골보다 도시에 있다. 서울과의 결별은 다각적인 검토아래 단행되는 게 좋다. 또 대부분에겐 떠나지 않는 편이 훗날을 위해서는 맞다. 원망을 피하려면, 자산을 지키자면 서울을 떠날지언정 거리는 최소화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

지방러(지방+er)의 서울행은 은퇴인구에서도 확인된다. 간병·의료를 위한 7080세대의 서울전입은 실체적이다. 자녀가 살거나 부유할수록 서울행은 잦다. 강남 3구만 해도 75세 이상 사회전입은 증가세란 통계도 있다. 노후와 도시가 어울린다는 메시지다. 한국도 곧 초고령사회가 된다. 길고 넓은 시선과 결정이 행복노후를 가름짓는 사회란 얘기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