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노후’가 아니라 ‘미래’다

엄길청 미래경영학자·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입력일 2021-11-17 14:06 수정일 2021-11-17 14:06 발행일 2021-11-18 19면
인쇄아이콘
2021101101000506500021671
엄길청 미래경영학자·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유튜브 등을 보면 노후준비에 관한 좋은 콘텐츠와 댓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베이비부머들이 고령사회로 본격 진입하는 시기이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미리 노령연금을 들라는 소리가 가장 많다. 주거환경과 소일·취미는 어떻게, 가족관계와 삶에 대한 준비는 어떻게 하라는 얘기들이 대종을 이룬다. 미래 세상의 변화와 추이를 내다보고 삶을 예상해주는 얘기들은 별로 없다. 그냥 노후를 일정하게 정형화 해놓고 어떻게 대응하자는 말 들이다.

노후에는 돈이 얼마나 있어야 하고, 어디서 누구와 지내야 하는 지는 지금 단계에서 특정하기 어렵다. 정말 각자가 닥쳐봐야 아는 일들이다. 빠르다고 했던 산업사회의 변화도 지금의 세상혁신에 비하면 느리다. 곧 싱규랠리티(singularity), 특이점 시대를 지나게 된다. 이미 세상은 비대면, 탄소제로, 대체에너지, 전기·수소차, 메타버스, 디지털코인, NFT 등 하루가 천일처럼 변한다. 미래를 살아가려면 나이 불문하고 더욱 공부하고 대응하고, 가능하면 연부역강의 정신과 능력과 생명의 기반을 다지고 길러야 한다. 일각의 삶에서라도 나름의 장렬(heroic)함이 채워져 있어야 한다.

지금 70대인 분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5000~1만 달러 전후의 시기에 왕성하게 활동했고 1990년대부터 2000년대 까지가 수입의 절정기였다. 본인 대학진학률도 낮고, 자식 키우고 가르치고, 부모님 봉양에 애쓰느라 노후를 준비한다는 게 쉽지 않은 시기였다. 100세 기준으로 30년 정도 수명이 남았다고 할 때, 이들은 국민소득이 두 배 가량(연간 2.4% 성장 시)이 늘어난 6만 달러대로 올라가는 동안을 쭉 노후생활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시기에 실질금리는 제로에 가깝다. 어떤 안전자산이나 장기안전 상품에 들었더라도 대체로 재산의 증식보다는 원금 유지 정도이다. 1950년대 후반 출생자들까지 65세 이상으로 본격 진입하면 1500만 명 가까이가 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누구도 안정된 노후 미래 환경을 점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장년과 노년들의 노후는 제도적이고 사회적인 배려가 높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인생은 따지고 보면 본질이 혼자다. 공동체의 의존과 보호는 그래서 개인에겐 참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노후는 변화무쌍한데 대부분의 노후정보들은 미래의 심리적 안정이나 편안한 일상의 구상을 팔면서 때론 노익장의 결기와 도전을 희석시키기도 한다. 단색화로 유명한 박서보 화백은 나이 들어 더 크게 주목받는 화가이다. 평생 가르치던 대학에서 퇴직 후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단색화에 집중해 세계의 화단을 놀라게 했다. 전기공학자 황규빈 박사는 자신이 실리콘밸리에 세운 회사에서 스스로 은퇴하고, 다시 사회기부용 벤처사업체를 차려 번 돈은 다 기부 한다. 두 분은 구순과 팔순을 넘긴 분들이다.

아프고, 힘들고, 외로운 일은 나이든 인생이면 누구도 피하지 못한다. 그래서 노후의 근사한 피난지대나 나만의 안전구역은 어디에도 없다. 나이가 들수록 부강한 정신이 부유한 돈보다 더 요긴하다. 노후는 인생의 저녁이 아니라, 인생에서 만나는 어느 ‘그녁(there)’이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은 온전히 하나를 이루기에도 많이 부족한 시간이다.

엄길청 미래경영학자·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