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증세 없는 복지강화는 허구다

박봉규 2022 세계가스총회 조직위원장
입력일 2021-11-10 15:06 수정일 2021-11-12 22:12 발행일 2021-11-1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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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2022 세계가스총회 조직위원장

정치의 계절이다. 대선 후보자들은 저마다 국가 발전 청사진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표를 얻어야 하는 공약의 특성을 감안해 보수적으로 판단하더라도, 이들 내용대로만 된다면 우리나라는 곧 선진 경제강국이요,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복지국가가 될 것이다.

공약 실천에는 제도와 문화, 그리고 행태를 바꾸는 노력 외에 많든 적든 돈이 투입되어야 한다. 돈이 문제다. 재정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귀가 솔깃한 내용을 나열하는 후보도 정작 그 많은 돈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선 엉거주춤하다. 마지못해 하는 대답도 불요불급한 세출 구조조정이나 전용 또는 예산절감을 통한 재원 마련 정도다. 어림없는 일이다.

지금 나라 형편을 보면 돈 쓸 곳은 많아지는데 수입이 더 늘어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고령화와 함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복지수요의 확대로 재정수요는 큰 폭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어떤 형태이든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그 규모는 훨씬 더 커진다. 반면 성장 잠재력은 떨어지고 세입기반은 약화되어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한 조세수입이 크게 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늘어나는 재정수요에 대응하려면 국민들이 세금을 더 내거나 빚을 내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채를 발행할 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가능하다. 우리 국가채무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거나 국가채무 비율의 절대적 기준 자체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빚을 내는 것은 한시적 위기를 극복할 때나 가능한 일이지 매년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경우에는 사용할 수 없는 대안이다. 무엇보다 나랏빚을 늘리는 일은 지금 세대의 안일을 위해 미래세대의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다.

복지 확대와 인프라 투자를 계속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하다. 국민들이 싫어하고 표가 달아나는 일이라도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정면 돌파해야 한다. 미래세대를 걱정하는 기성세대라면 이런 정치인의 호소에 동참해야 한다. 듣기 좋은 얘기만 하고 재정 부담에는 어정쩡한 태도로 ‘내 임기 5년만 넘기면 된다’는 자세는 결코 지도자의 태도가 아니다.

증세의 방향과 속도를 포함해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는 일이 시급하다. 기존 예산 중 불요불급한 부분을 절약하고 재정지출 구조를 합리화해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 첫째다. 각종 비과세 감면제도의 조정을 통해 실효세율을 높이거나 고소득자, 자산가 등을 중심으로 핀셋 증세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재정수요를 충당하기 어렵다. “너는 부자니 더 내라”며 강요하는 것도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간이과세 기준의 조정 등을 통해 소득이 있는 사람이면 얼마라도 납부하도록 하는 것이 조세 원칙의 보편성에도 맞고, 국가에 무엇을 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당당함도 생길 수 있다. 

부가세 인상은 최후의 수단이 될 것이나 필요하면 이 또한 해야 한다. 증세를 공약하고 세금을 올리면 자신과 정부의 인기는 떨어지고 심하면 다음 선거에서 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뛰어넘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국가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다. 국민들 또한 마음속으로는 그러한 지도자를 바랄 것이다.

박봉규 2022 세계가스총회 조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