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노인 외출의 사회경제학

전영수 교수
입력일 2021-10-31 15:11 수정일 2022-05-22 18:28 발행일 2021-11-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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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교수
전영수 교수

알면서 당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건 없다. 답답한 건 이런 불상사가 반복되는 현실이다. 특히 정책과정에서 현실과 대책의 엇박자가 잦다. 제 때 맞춰진 정책이 필요한데, 관점·시기의 미스매칭이 화를 키우곤 한다. ‘때’는 그만큼 중요한 변수다. 가성비 좋은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현실 반영이 전제된 대응체계가 시급하다.

한국 사회의 변화 흐름은 꽤 역동적이다. ‘다이내믹 코리아’답다. 표준모델·일반경로란 건 무의미해졌다. 어제의 상식은 오늘의 유물이다. 그만큼 시대 흐름이 급격하다. 인구 변화가 대표적이다. 한국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전대미문의 급변통계 보유국이다. 출산율은 2000년 인구위기선(1.3명)을 깬 이래 놀랍도록 내려꽂히고 있다. 2018년부터는 1명을 밑돈다. 2021년 0.7명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대로면 한국은 순식간에 초고령사회에 닿는다. 고령화율은 16.9%(2021년 9월)다. 2017년 고령사회(14%)가 됐는데, 초고령사회(20%)를 향해 매섭게 질주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다. 추세를 보면 3~4년 후면 초고령사회가 확실시된다. 워낙 안 낳으니 예정대로 늙어가는 인구비중이 더 부각돼 비율을 끌어올린다. 최근 65세에 진입한 광의의 베이비부머(1955~75년생) 1700만명을 보건대 노인비중은 급증세다. 연 85만명씩 신규 노인이 배출된다.

이로써 노년사회는 예고됐다. 정해진 미래다. 현재 고령화율 1위는 일본으로 29%대에 육박한다. 주지하듯 늙음이 촉발한 총체적 위기의 조짐이 뚜렷한 사회다. 갈등과 부담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된다. 산업역군의 대량 퇴장은 거리 풍경마저 늙음으로 뒤바꿨다. 당사자는 장수 재앙에 무기력하다. 재택간병은 개인 부담을 뜻한다. 해서 있는 듯 없는 최소 활동의 유령인구로 살아간다. 숨만 쉬며 집안에서 은둔한다. 노년 고립이다. 고립은 또 질병을 낳는다. 결국 노년은 빈곤·고립·질환의 트릴레마로 완성된다.

초고령사회는 인류의 첫 경험이다. 일본처럼 몇몇 나라가 맞섰지만, 여전히 갈팡질팡이다. 현상이 문제가 돼선 곤란하다. 어쩌면 기회로 삼는 역발상이 해결의 힌트다. 뒷방 퇴물로 전락한 거대 인구의 재검토가 그렇다. 방치하면 경제순환과 사회구조는 유지될 수 없다. 그래서 절실한 게 예고된 미래에 올라탄 맞춤형 대응이다. 늙음을 방치하기보다 편입하는 뉴노멀이 그렇다. 대타협으로 늙음을 흡수할 때 위기는 기회가 된다. 아쉽게도 시간은 길게 주어지지 않는다. 때를 놓치지 않는 선제적 고민과 실체적 체계가 강구될 시점이다.

대응 취지는 고령인구의 활력 유지에 있다. 잉여인구에서 활동인구로 유인하면 다목적 효용이 달성된다. 고립만 막아도 후생은 커진다. 거창한 정책도 필요하나, 당장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일본의 도야마시는 ‘외출정기권’이란 사업을 내놨다. 고령 주민의 외출 허들을 낮추고자 공공교통비를 낮췄다. 한국의 지하철 경로우대와 닮았다. 단 주간에 한정해 갈등 여지를 줄였다. 손주와 동반 외출시 공공시설 입장료도 없앴다. 각국의 벤치마킹은 잇따른다. 세대교류형 커뮤니티란 호평도 있다. 고립보다 활력을 통해 노인 소외에 맞설 한국형 대안 실험이 필요한 때다.

전영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