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음악 오디션 유감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21-10-24 14:25 수정일 2022-05-22 18:32 발행일 2021-10-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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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여기를 둘러봐도 가수 오디션, 저기를 돌려봐도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다. 재방송까지 틀어대니 가히 음악 오디션 천국이다. 10년 전쯤 M.net의 ‘슈퍼스타K’가 케이블채널로서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한 이후 ‘K-Pop Star’ ‘위대한 탄생’ 등이 지상파까지 점령했다.  하지만 금세 식상해져 버리고 시청자들이 외면하자 음악 오디션은 시들했었다. 그러다 재작년부터 트로트 오디션이 급부상하면서 각종 음악 오디션들이 연말까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남녀 트로트 오디션 시리즈로 짭짤한 돈맛을 본 TV조선은 K팝 분야로 확장하며 노골적인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장르, 국적을 뛰어넘는 ‘내일은 국민가수’라는 문어발 확장 노선은 상업주의의 발톱을 대놓고 드러낸다. 별다른 개성이나 차별화도 없다.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의 MC 김성주의 진행을 필두로 포맷도 거의 판박이다. 계열사 신문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광고성 기사로 도배를 하고 있지만 어떤 차별점이나 개념, 철학도 없다. 시청자의 선택권, 공공성도 외면한채 그저 돈벌이에만 혈안이다. 

음악 오디션의 원조 M.net은 ‘걸스플래닛 999 : 소녀대전’으로 오디션 대세에 동참한다. 한·중·일 3개국 합동으로 각국에서 99명의 소녀들이 출전해 최종 9명을 뽑는다. ‘프로듀스101’의 불미스러운 조작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데 큰돈의 흐름을 놓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방송 기획의 자유가 있다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기대했었다.

공익성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하는 지상파 공영방송들도 다르지 않다. KBS는 7080 흘러간 음악을 내세워 ‘우리가 사랑한 그 노래 새가수’를 선보이고 있다. 오디션에서 경쟁의 차원을 떠나 추억을 찾아보자는 기획은 공감할 만하지만 결국 예전 히트곡들을 부르는 젊은 가수들의 경연장일 뿐이다. 오디션의 단골 손님 이승철, 성시경 등은 안전장치다. 공영방송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가 있는 시청자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시청률은 바닥권을 헤매고 있다. 

지상파 방송들의 사정과 처지는 대동소이하다. 공영성은커녕 기본적 수준까지 의심받고 있는 MBC는 2개의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지난 올림픽방송 등의 실수를 만회하려 했다. 그러나 아이돌 지망생들이 펼치는 ‘극한데뷔 야생돌’은 한때 인기를 끌었던 ‘진짜 사나이’의 억지 패키지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MBC표 걸그룹 프로젝트 ‘방과후 설렘’도 CJ 연출팀을 모셔와서 결국 방송국만 바뀐 ‘프로듀스 101’에 그치고 말았다.

안 봐도 뻔한 음악 오디션들에 비해 그나마 신선한 장르에는 눈길이 간다. 퍼스트무버보다는 패스트팔로워 전략으로 고만고만한 오디션을 내놓았던 MBN은 조심스레 ‘국악’ 카드를 꺼내들었다. 최근 이날치 밴드 등의 급부상에 힘입어 ‘조선판스타’에서 실력파 ‘K소리꾼’을 발굴하려고 한다. 참신함과 용기를 바탕으로 MC 신동엽을 필두로 국악계 대모 신영희 명창에 김조한 등 팝스타들을 심사단에 포진시켜서 쉽게 접근하기 힘든 장르에 어렵게 도전하고 있다. 오징어게임 덕분에 한류의 흐름이 한없이 넓어지는 마당에 우리 전통 소리가 세계인의 귀에도 아름답게 들릴지 차분하게 두고 볼 일이다. 적어도 명분은 살아있으니까.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