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가스라이팅

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
입력일 2021-10-13 14:13 수정일 2022-05-22 18:29 발행일 2021-10-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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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용어가 있다. 패트릭 해밀턴 원작의 연극에 기초해 1944년 미국에서 상영된 영화 ‘가스등’에서 유래한 말이다.

고전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기억이 날 수도 있겠다. 부잣집 상속녀인 폴라(잉그리드 버그만)를 그녀의 남편(찰스 보이어)이 교묘하게 조정해 재산을 가로채려고 하는 내용으로, 남편이 아내를 억압하고 자신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집 안의 가스등(Gaslight)을 억압의 도구로 이용하는데, 바로 여기에서 나온 용어이다.

가스라이팅은 대개 가정, 학교, 직장, 연인 등 주로 밀접하거나 친밀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생면부지의 남의 말을 신뢰하고 의존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므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권력으로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하려 할 때 사용되는 방법이기에 보통 수평적인 관계보다는 수직적이고 비대칭적인 관계에서 주로 이뤄지게 된다.

어른들은 혹여 자녀들이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할 경우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통해 배워간다), “거봐라. 네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있느냐”고 다그치며 “엄마 아빠 말을 안 들어서 그렇게 됐다”고 한다.

비단 가정 내에서 뿐만 아니라 연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 아니면 누가 너를 만나겠느냐, 우리가 싸우는 건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런 거라며 수시로 윽박지르고, 이게 모두 다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너만 잘하면 우리 관계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억지로 설득을 시키고 통제한다.

혹시라도 위에서 언급한 말들을 그동안 들어본 경험이 있다면 해당 인간관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말했다시피 가정은 아주 작은 최소 단위의 사회이다.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가 함께 공동생활을 하며 가정 밖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성을 배우게 된다. 함께 부딪히며 소소히 맞닥뜨리게 되는 분쟁 내지는 문제 발생 상황 속에서 타협하고 배려하며 문제해결 능력도 생기고 사회성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가스라이팅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을 의심하며 성장해 간다면 당연히 자존감이 낮아질 것이고, 안정적이지 못한 심리상태로 가정 밖의 사회에서 타인과 부대끼며 생활해 가야 한다. 예상되는 바와 같이 불안정한 사회생활로 이어지기 쉽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이런 나를 누가 인정해 주겠어, 등의 자기 비하적 생각은 어떤 상황에서도 건강하지 않을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바람직하고 건전한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가짐이 우선이다. 자신의 소중함을 늘 간직하고 되새기며 이를 기반으로 상대를 존중할 줄도 알아야한다. 나의 말 한 마디가 사랑하는 가족, 친구, 동료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일 수 있는지, 상처를 줄 수도 있고 큰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야겠다. 같은 말이라도 상대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하며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오늘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쏟아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며 살자.

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