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개혁, 일단 첫걸음부터

박봉규 2022 세계가스총회 조직위원장
입력일 2021-10-07 15:47 수정일 2022-05-22 18:28 발행일 2021-10-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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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WCG2022조직위원장
박봉규 2022 세계가스총회 조직위원장

조선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생활개혁은 단연 대동법의 시행이다. 지역 특산물을 현물로 바치는 공물 대신 쌀로 통일해 내게 한 제도다. 백성들이 부담한 조세의 한 종류였던 공물은 지역 특산물을 임금께 진상한다는 좋은 뜻에서 시작된 제도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징수과정에서는 부정과 부패의 온상이요, 조세정의 측면에서는 불평등의 대명사가 되었다. 무엇보다 공물은 재산세가 아닌 인두세였기에 부자나 가난한 자가 같은 몫을 부담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과세공평을 실현할 수 있겠는가. 간단하다. 모든 생산의 원천인 토지의 많고 적음에 따라 세금을 부담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행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을 걱정한 광해군이 경기도에 시범 실시한 대동법이 전국에 걸쳐 시행되기까지는 꼭 100년이 걸렸다. 기득권 세력의 반대는 물론 시행을 위해 행정적으로 준비하고 보완할 사항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땅이 많은 양반과 부자들은 백성을 위한다는 핑계에 갖가지 구실로 제도시행을 방해했다. 시행효과는 없으면서 말로는 그럴듯한 대안을 제시하며 본질을 호도했다. 전국에서 한양으로 쌀을 운송하는 문제나 한양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현실적 한계도 있었다. 그러나 제도 시행의 성과가 입증되자 충청도를 거쳐 경상도와 전라도까지 전국에 확대 시행될 수 있었다.

개혁은 어렵다. 사람은 변화를 싫어한다. 개혁에 대한 반대 목소리는 큰 데 비해 그 효과는 더디게 나타난다. 모두가 공감하는 개혁과제라도 이해당사자 간의 대타협을 통해 해법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득권 세력은 절대 자기 몫을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절체절명 위기에 처해 모두가 그것 아니면 다른 대안이 없을 때나 가능한 법이다. 유럽의 노동개혁이나 외환위기 당시 우리 개혁이 그 예다. 기득권 세력은 시간끌기로 개혁동력이 시들어지기를 기다리거나 부작용에 대한 침소봉대, 심지어는 개혁세력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발목을 잡는다.

현실적 대안은 개혁의 목표와 방향은 크고 장기적으로 제시하더라도 구체적 실천에 있어서는 작은 한걸음을 내디뎌 효과를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성과에 호응한 국민여론이 제도의 확대 시행을 요구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도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 걸쳐 거창한 개혁과제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노사정 회의가 중심이 된 노동개혁에서 보듯이 지난 10년 동안 실천에서는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속 시원하게 한 칼에 해결하려다 시간만 끌고 개혁피로만 쌓인다.

작더라도 일단 시작해 보자. 우선 방향만이라도 전환해 보자. 획일적 기준이 적용하는 일반학교 대신 창의적인 실험적 대안학교가 설립될 수 있게 해 주자.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허용해 보자. 도서지역이나 일선 군인들 대상으로 원격진료를 더 확대해 보자. 경제자유구역에서는 규제를 완화해 시장과 민간의 창의가 발휘되도록 맡겨 보자. 그 성공을 바탕으로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전국으로 확대해 나가자. 임기 중에 반드시 끝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다릿발 하나 세우면 다음 사람이 그 다음을 세워 다리를 완성하게 하는 것이다. 대동법도 처음부터 전국을 대상으로 동시에 시행되었더라면 분명 실패했을 것이다. 대동법을 시행한 선조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이다.

박봉규 2022 세계가스총회 조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