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C의 공포

이계안 2.1지속가능재단설립자
입력일 2021-09-26 15:12 수정일 2021-09-26 15:13 발행일 2021-09-2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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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안 2.1지속가능재단설립자

지금도 꿈에 나타나 내 단잠을 깨우는 악몽 중 하나가 온통 ‘C’뿐이었던 대학교 1학년 1학기 성적표이다. 말 그대로 청운의 꿈을 품고 들어간 대학, 그것도 속옷에도 배지를 붙이고 다닌다는 자랑스러웠던 대학생인데, 학교가 위수령으로 문을 닫아버리고 친한 친구 몇이 모여 공들여 써낸 리포트에 대한 평가가 겨우 C라니. 게다가 같이 공부한 친구 하나는, 악필인 나와는 달리 달필이라 할 그 친구는 보란듯이 A를 받았는데….

돈짝만하게 보이던 하늘이 한없이 높아 보이고 가이없어 보이기도 한 순간이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세상에 대한, 세상의 평가에 대한 나의 신뢰(Credit)가 깨어진 계기가 되기도 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지금도 심심치 않게 꿈에 나타나 내 단잠을 깨우는 것을 보면 말이다.

지금은 또 다른 두 개의 C가 동시에 나를 위협한다. 기후 변화(Climate Change)와 코비드-19(Covid-19·코로나19)가 그것이다. 이제는 누구도 부인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기후변화는 물론 코로나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또는 해야 할 일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걷기, 마스크 쓰기, 사회적 거리두기.

기후변화나 코로나19는 대처하기 쉬운 숙제는 아니다. 나 하나가 무엇을 한다고 해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바는 전혀 없다. 그것이 사회이든 나라이든 인류 전체이든 나 자신은 그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내가 빠진 그것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고 애써 나 자신을 자리매김해보는 것일 뿐. 나 혼자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고 걷기를 한다고 해서 기후변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알고 있다. 물론 나 혼자 마스크를 쓰거나 거리두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코로나19 문제가 해결될 일도 아니다.

이 두 가지 C보다 더 중요한 C가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그것의 성공 여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전체의 뜻에 부합하고, 또한 남들도 나처럼 행동할 것이라는 믿음(Credit)을 전제로 한다. 전체가 다 함께 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에만 이런 나의 노력도 빛을 발하게 된다. 개개인은 자신의 최대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데, 그 결과가 사회후생의 총량 감소로 나타나는 구성의 오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후쿠야마가 말하는 ‘신뢰(Trust)’라고 하는 사회적 자본, 즉 사회적 믿음에 기초한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불과 17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고발사주’, ‘화천대유’ 등 온갖 의혹이 난무한다. 그런 의혹을 놓고 벌어지는 싸움은 총만 들지 않았을 뿐 전쟁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런 전쟁으로도 의혹은 밝혀지거나 풀리기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하는데 꼭 필요한 믿음(Credit)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C로 시작하는 것들, 기후변화(Climate Change), 코비드-19(Covid-19)도 물론 두렵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상대방의 선의에 대한 믿음(Credit)을 잃는 것이다. 건강한 사회는 무죄추정의 원칙(benefit of doubt)처럼 아무리 의심스럽더라도 상대방의 선의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건설된다. 20대 대통령선거를 잃었던 믿음을 되찾는 계기로 삼자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까?

이계안 2.1지속가능재단설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