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경청과 딴청

엄길청 미래경영학자/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입력일 2021-09-08 14:14 수정일 2021-09-08 14:16 발행일 2021-09-09 19면
인쇄아이콘
20210803010000638_1
엄길청 미래경영학자/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역사에서 이처럼 ‘말’이 횡행하던 시절이 있을까 싶도록 우리는 말의 범람에서 일상을 보낸다. 침묵이 얼마나 깊고 참된 인생의 성숙감인지는 언제 깨달으려는지 저렇게 애 어른 없이 가볍고 무책임하고 심지어 단말마적인 말들이 온갖 정보기술을 타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기원전 5세기 중엽에 아테네는 ‘말의 성전’이었다. 덕분에 민주정치 토양을 쌓을 수 있었고 당시 거리의 말들은 2000년이 넘는 역사에 남아 지금도 울림을 준다.

댓글은 쌍 방향 정보기술 시현 과정에서 나온 통신표현의 문화적 양상이다. 관조와 사색의 장면에서 댓글이란 실은 생각의 방해이자 상념의 췌사들일 수도 있다. 요즘 소셜 미디어에서 몇 몇 호사가들은 수시로 자기 얘기를 사회관계망에 떠들며 직업 삼아 지낸다. 나라 경영에도 제 이름을 무슨 공짜밥상의 숟가락처럼 올리려는 이들도 있다. 대개 그런 자들이 모여드는 곳은 권력이 있고, 돈이 있고, 저자의 관종꾼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실시간 방송 댓글은 아예 심정적 패거리와 편먹고 상대를 죽이자고 가세해 끝을 보겠다는 악의에 찬 말들의 추악함을 곧잘 드러낸다. 선한 여론이나 솔직한 반응이란 이름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사회매체의 목소리가 자칫 여론이란 이름으로 기울지기 쉬운 편향성의 일면이기도 하다.

투자 정보를 다루는 직업은 참 조심스럽다. 대개는 금융투자기관에서 훈련 받고 학교에서 익힌 여러 지식을 바탕으로 현장 경륜을 쌓아가며 자기 식견을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펼쳐야 한다. 주식이나 주택 투자정보는 자칫 자극적 언행을 하면 즉각 따라하는 사안이라 정말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가볍고 충동적인 내용을 입에 담고, 단호한 행동을 자극하는 그런 투자전문가란 사람들이 검증 없이 늘어나고 있다.

이걸 묶어 플랫폼이나 퍼블리싱을 만들어 돈을 버는 콘텐츠 매집상이나 중간수집상들도 있다. 혹자는 아예 자기들 데이터의 취향분석 대로 콘텐츠를 주문 제작까지 하니 참으로 추한 욕심들이다. 어느 날 반드시 그들도 누군가의 돌연한 방해로 막을 내릴 날이 있을 게다.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판도 대략 그런 식이다. 정치인들의 꼴을 보면 저렇게 가볍고 즉흥적이고 무책임하게 말을 하며 살고 싶을까 싶다. 멀쩡한 직업을 갖고 있다가도 정치판에만 가면 대개는 저런다. 요즘은 정당도 무슨 플랫폼이자 퍼블리싱 같다는 생각이 든다.

투자도 그렇다. 어쩌다 발을 들여놓으면 시장분위기에 갑자기 열광하고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불행한 계기가 되어 어느 PC방 후미진 의자에 박혀 전업투자자랍시고 긴 세월을 어둡고 우울한 삶을 살기 일쑤다. 가진 돈 다 잃고 결국 주식시장이나 경매법원 주변에서 불나방 같은 입담으로 살아간다.

지금 유튜브나 경제방송 등을 보면 필자가 현업에서 일할 때 당시의 몇 사람이 아직도 한 구석에 남아 급등종목과 특급테마주의 쪽집게라며 전화번호를 남기는 시황정보업자로 살아간다. 부동산 판매업자가 부동산 투자전문가로 자신을 소개하며 여전히 양면으로 활동하고 지낸다. 언제나 말하는 자는 듣는 자가 경청해야 그 말에 가치가 있고 그 일에 자부심이 생긴다. 저마다 딴청에 바쁜 이 독서의 계절을 맞으며, 한국 언론이 정론을 담아내며 시대의 목탁이자 거울이던 시절이 참 그립다.

엄길청 미래경영학자/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