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은퇴는 없고 생활은 있다!

한양대 국제대학원 전영수 교수
입력일 2021-08-30 06:00 수정일 2021-08-30 06:00 발행일 2021-08-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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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국제대학원 전영수 교수

대은퇴시대가 개막됐다. 지금까지의 은퇴경로는 잊어도 좋다. 앞으로 펼쳐질 은퇴행렬은 빈도·규모에서 예전과 확연히 구분된다. 1700만 베이비부머(1955~75년생) 때문이다. 이들은 2021년 올해부터 고령기준(65세)을 넘기며 은퇴입구로 들어선다. 베이비부머답게 한해평균 ±85만명이 생산가능인구(65세)에서 벗어난다. ‘인구보너스’ 시절엔 이들 대규모·저임금·고학력의 노동공급이 고도성장의 엔진이 됐으나, 지금은 역으로 축소지향적인 인구병·저성장·재정난의 ‘인구오너스’를 초래한다. 순풍이 역풍으로 되돌아선 셈이다. 흘러넘칠 은퇴인구발 불안·갈등은 예고된 수순에 가깝다.

단 이는 이론적이고 낙관적인 가정이다. 현실은 훨씬 괴팍하고 먹먹하다. 65세까지 현역일 수 없거니와 일해도 단기·주변부의 불안한 저임금노동자·아르바이트 신세일 수밖에 없다. 혹은 재정투하형 한시적 공공일자리뿐이다. 하물며 화이트컬러라면 은퇴는 사실상 50대 초면 닿는 문제다. 가장 오래 일한 직장에서 물러난 때를 물으면 대부분 이 연령대 전후로 공통된다. 이후엔 잘해야 전직 아니면 창업뿐이다. 65세 은퇴는 그나마 극소수에 머문다. 한국의 정년은 대부분 60세가 끝이다. 국민연금을 65세부터 받도록 제도화된 50세 초중반에겐 5년의 소득단절을 피할 수 없다.

거대인구의 본격은퇴는 불행과 함께 진행될 확률이 높다. 평균수명까지 늘면서 은퇴현장의 제반갈등은 총체적 사회문제로 번질 수밖에 없다. 2021년을 전후로 대량은퇴는 골목길 한정이슈에서 신작로로 확장된 범용화두로 자리매김한다.

한편에선 파이어족도 떠오른다. 경제적 자유의 조기달성 후 자발적인 은퇴선언을 파이어(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라 칭한다. 낯설되 부러운 카드다. 과부족의 한계상황에서 내몰린 보통의 은퇴강권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필요한 논점은 ‘은퇴의 재구성’이다. 은퇴가 갖는 고정된 이미지로부터 벗어나는 차원이다. 은퇴했다고 뒷방퇴물은 아니다. 어떤 식이든 활동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 호구지책과도 무관하다. 곳간이 넉넉하면 좋겠으나 필수조건은 아니다. 파이어족조차 경제활동이 단절되지는 않는다. 눈치압박의 직장이 없어질뿐 하루 24시간의 생활은 계속된다. 은퇴를 무업(無業)으로 여기는 고정관념 탓이다. 완벽한 단절을 떠올릴수록 은퇴는 무섭고 괴롭다. 은퇴는 실존할 수 없다. 실존하는 건 생활이다. 따박따박 꽂히는 월급과 출퇴근할 직장이 없어진다고 삶은 중단되지 않는다.

은퇴에 필요이상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다. 직장이 영원히 챙겨주지 않는다는 건 경험법칙이다. 언젠가 헤어질 수밖에 없다. 느닷없는 결별선언에서 충격을 덜 받자면 그저그런 생애이벤트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게 좋다. 그 다음의 호구지책이 불안하지만, 못 버텨낼 일도 아니다. 눈높이를 낮추고 삶을 조정하면 충격흡수가 가능하다. 줄어든 소득에 맞춘 구조조정의 필요다. 은퇴는 만들어진 제도다.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정적제거를 위해 65세 이후 정치활동을 금지시킨 게 시효다. 당시 평균수명은 67세였다. 유병노후를 감안하면 65세 은퇴는 납득가능한 연령대였다.

지금은 달라졌다. 19세기의 은퇴가 20세기의 제도로 21세기의 생활을 파괴한다. 만들어진 프레임이 먹혀들지 않으면 폐기대상이다. 생활하는 한 은퇴란 없다.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야말로 은퇴다. 그렇다면 유병비율이 본격화되는 75세까지는 현역이다. 제도와 관습에 포섭될 이유는 없다. 직장이 끝나도 직업은 계속되는 게 좋다. 적어도 일은 필수다. 돈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다. 그걸 받아들여야 건강해지고 돈 쓸 곳도 줄어든다. 작지만 꾸준한 활동과 소득이 중요하다. 해서 은퇴의 재구성은 일의 재구성과 맞물린다. 정부와 기업은 대량은퇴의 욕구분석과 제도수정에 나설 필요가 있다. 방치하면 은퇴주술에 휘둘리나 올라타면 새로운 노후활로가 펼쳐진다.

한양대 국제대학원 전영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