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영탁 막걸리' 상표 분쟁

전소정 지심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입력일 2021-08-23 14:24 수정일 2021-08-23 16:29 발행일 2021-08-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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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소정 변리사
전소정 지심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트로트 가수 영탁(본명 박영탁, 38)과 예천양조의 갈등이 결국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게 됐다. 영탁 측은 예천양조가 공갈·협박, 명예훼손, 상표권 부당 사용 등을 하고 있다며 법적대응을 예고했으며, 예천양조는 사실적인 증거자료에 입각해 대응하겠다고 맞대응을 했다.

예천양조와 영탁 간의 법적 공방이 치열한 상황이라 무엇을 팩트로 받아들여야 할 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 계약 관계에 있던 자가 상표 출원을 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분쟁에서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상표법은 “저명한 타인의 성명·명칭 또는 상호·초상·서명·인장·아호·예명·필명 또는 이들의 약칭을 포함하는 상표. 다만, 그 타인의 승낙을 받은 경우에는 상표등록을 받을 수 있다”(제34조 제1항 제6호)는 조항과 “동업·고용 등 계약관계나 업무상 거래관계 또는 그 밖의 관계를 통하여 타인이 사용하거나 사용을 준비 중인 상표임을 알면서 그 상표와 동일·유사한 상표를 동일·유사한 상품에 등록출원한 상표는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다”(제34조 제1항 20호)는 조항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동업, 거래, 고용 또는 계약 관계에 있던 자가 몰래 상표 출원하는 경우들이 상당히 많다. 심지어 부부가 같이 사업을 운영해 오다가 이혼한 후 일방이 기존 사업 브랜드를 동일 또는 극히 유사하게 상표 출원하는 경우도 종종 만난다. 우리 상표법은 선출원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기에 먼저 출원한 자에게 권리를 준다. 선출원주의를 그대로 적용하면 진정한 권리자임에도 미처 상표 출원을 해두지 못한 경우 이러한 법적 미비 상태를 잘 알고 있는 계약 관계에 있던 자가 먼저 출원을 하면 상표권을 빼앗아갈 수 있다.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20호가 신설되기 이전에는 이런 행태가 종종 있었으나, 신설 이후로는 신의칙에 반하는 이러한 출원 행태를 저지할 수 있게 되었다. 영탁 막걸리 역시 계약 관계에 있던 가수 영탁이 예천양조 몰래 상표 출원을 했다면 이 규정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영탁’이라는 이름 자체가 저명한 가수 ‘영탁’의 이름을 포함한 것이어서 ‘영탁’이라는 상표의 최초 사용, 작명 주체 등에 대한 입증은 새로운 쟁점이 될 수 있어 보인다. 단 예천양조 측은 출원 전부터 ‘영탁 막걸리’를 사용해 왔기 때문에 선사용권을 가지게 되어 독점점 사용은 하지 못해도 ‘영탁’의 사용 자체는 가능한 상황이다.

계약을 이행하는 당사자들은 계약 이행에 따른 권리와 의무가 발생한다. 상표법이 선출원주의를 취한다는 이유로, 선출원주의를 악용하여 신의칙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는 당사자가 법적 보호를 받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상표법 체계도 점점 다차원적인 보호를 꾀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선출원주의의 원칙을 유지하지만, 진정한 사용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권리 관계의 형식이 아닌 실체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점점 촘촘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출원만 먼저 하면 장땡이다 라는 식의 악의적 출원 행태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개인이나 기업 모두 자신의 권리 관계의 실체와 부합하지 않는 악의적 또는 명목상의 상표권을 취득하고자 하는 시도는 이제 그만 멈춰야 하지 않을까.

전소정 지심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