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우리 시대의 '태종'은 없는가

박봉규 세계가스총회 2022 조직위원장
입력일 2021-09-01 14:19 수정일 2021-09-01 14:19 발행일 2021-09-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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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세계가스총회 2022 조직위원장

아버지와 형을 쫓아내고 혁명 동지였던 신하들을 죽이면서 왕으로 등극한 태종 이방원은 걱정이 많았다. 정통성 부족의 약점을 극복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신생국 조선의 토대를 세워야 하는 당면과제가 그 앞에 놓여 있었다. 그는 왕이 중심이 되어 강한 왕권을 바탕으로 백성의 삶을 보살피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다. 왕권 강화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치우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외척이 정치에 개입하는 상황을 우려해 처남들을 비롯해 세종의 장인이자 자신의 사돈에게도 사약을 내렸다. 혁명을 위해 함께 목숨을 걸었던 공신들도 예외가 없었다. 양녕대군의 행실이 문제가 되자 세자까지도 충녕(세종)으로 바꾸었다. 밖으로는 대마도를 정벌해 왜구에 대한 근심을 덜어냈다.

태종의 이러한 정지 작업 위에 세종의 태평성대가 열릴 수 있었다. 세종 치적의 상당 부분은 태종에게 빚진 것이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태종은 말했다. “세상의 모든 악업은 내가 지고 갈 터이니 주상은 오직 성군이 되시오.”

지금 우리는 국가제도와 운영의 틀을 새로 짜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을 바탕으로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비해야 할 때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인구구조의 변화와 쌓이는 국가부채, AI를 비롯한 새로운 기술혁명 시대의 도래, 지속가능한 성장과 기후변화에 대응해 과거와는 다른 경제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공정을 부르짖는 젊은 층의 목소리를 수용하고 계층 간, 세대 간의 갈등구조를 해소하는 일, 해방 이후 2세대가 지나면서 각 분야에 형성된 기득권을 타파해 보다 유동적이고 경쟁력 있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일을 해야 하는 시기이다.

교육내용 변경을 포함해 학제와 대입제도의 개편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창의성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교육의 틀을 바꾸는 일, 신기술에 바탕을 둔 산업을 일으키고 민간의 창의와 역량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규제를 혁파하는 일, 사회안전망 보강과 더불어 노동의 유연성을 강화하는 일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정치구조 개편 또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다.

이 모든 과제들에 대해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지금 손을 쓰지 않으면 미래 세대가 얼마나 큰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안다. 문제는 말은 무성하지만 팔을 걷어 부치고 행동에 나서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5년 단임이라는 정치체제 한계와 당선에 목을 매는 정치지도자들은 열매 따먹기에는 열심이지만 십년 후에나 수확이 가능한 씨뿌리기와 거름주기는 뒷전이다. 지금 내가 나서지 않아도 임기 중에는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때 유럽의 병자로 놀림 받던 독일은 노동의 유연성 강화에 초점을 둔 슈뢰더 총리의 개혁으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 개혁으로 슈뢰더는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잃었지만 독일은 다시 세계경제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태종이다.

정치지도자는 모두 세종이 되고 싶어 한다. 정치의 최종 목표가 집권이니 지지율과 인기정책에 매달리는 것을 탓 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현명하고 정치의식도 높다. 그동안 그 필요에는 공감하면서도 손에 흙 묻히기 싫어 미루기만 했던 과제들에 대해 내가 태종이 되겠다고 나서는 지도자가 필요한 때이다.

박봉규 세계가스총회 2022 조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