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얻으려면 버려라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입력일 2021-08-09 14:20 수정일 2021-08-09 14:21 발행일 2021-08-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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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파리와 벌 중 누가 더 지능이 뛰어날까? 당연히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벌의 지능이 더 뛰어날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파리와 벌을 유리병에 넣고 입구를 빛이 보이는 쪽을 향해 놓으면 벌은 파리보다 훨씬 빠른 시간 내에 탈출에 성공한다. 벌은 빛이 보이는 방향에 출입구가 있다는 전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병의 입구를 빛의 반대 방향으로 바꿔놓았다. 벌은 하나둘씩 밝은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출구를 찾아나가려고 애를 쓰다가 지쳐서 모두 죽고 말았다. 그러나 파리는 모두 마개가 없는 입구 쪽으로 모두 빠져나갔다.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벌의 경험지식이 오히려 병에서 탈출하는데 방해가 된 것이다. 벌은 반드시 밝은 곳에 출구가 있다고 생각하고 빛을 찾아가는 과거의 경험적 행동만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벌보다 지능이 낮은 파리는 빛의 방향과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날아다니다가 반대쪽의 출구로 어렵지 않게 빠져나간 것이다. 이 실험이 전해주는 교훈은 기존의 전문적·경험적 지식은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변화된 미래의 환경에서는 오히려 성장과 발전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톰소여의 모험’의 작가이자 미국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크 트웨인이 남긴 말이다. 과거의 전문성과 경험적 지식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상황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과거의 지식을 버리자는 ‘언러닝’(Unlearning)의 정신을 강조하기 위한 메시지다.

학습에 있어서 가장 큰 장벽은 기존에 배운 것을 버리지 못하는 조직문화다. 언러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인텔이다. 인텔은 1980년대 PC시대가 개막한 이래로 PC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크로프로세서 분야의 독점적 지배력을 가진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해왔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모바일 시장 규모가 크게 확대되자 인텔은 자체 연구개발(R&D) 및 관련 산업분야의 인수합병(M&A)을 통해 역량을 확보했다. 이런 역량을 바탕으로 3세대 이동통신 부문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모뎀칩을 통합한 ‘소피아’를 출시하면서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인텔은 2016년 4월 돌연 이 사업에서 철수하고 만다. 최고의 기술력과 R&D 역량, 막강한 자금력을 지닌 인텔이 왜 모바일에서 실패했을까. 벌과 같이 입구가 바뀌었는데 빛을 찾아가는 과거의 경험적 행동만을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인텔은 PC시장에서 익숙한 경험적 지식과 성공 공식을 모바일에 그대로 적용했다. 변화된 제조 환경에도 불구하고 인텔은 전력 효율이 떨어지고 발열도 많지만 성능이 뛰어난 PC방식 그대로 모바일 제품을 출시했다.

“배우는 것보다 잊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새로운 방식의 실험, 다양성의 확장, 창의력이 숨쉬는 조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에 대한 습득 이전에 과거와의 단절이 필요하다. 노자는 말한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매일 무언가를 추가(Learn)하라. 지혜를 얻으려면 매일 제거(Unlearning)하라.”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