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상표 선출원주의의 그늘

전소정 지심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
입력일 2021-07-21 14:07 수정일 2022-06-19 15:08 발행일 2021-07-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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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소정 변리사
전소정 지심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

특허청이 관리하는 상표브로커(악의적 상표 선점 행위 의심자)는 지난달 기준으로 67명이다. 이들이 올해 낸 상표 출원은 250여 건인데, 특허청은 2014년에는 30명이 7000건을 접수한 것과 비교하면 인원은 증가하고 건수는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상표브로커 근절’은 지난 2015년 ‘비정상의 정상화 100대 과제’로 선정될 정도로 상표브로커는 국내에서도 기승을 부렸다. 이후 특허청 심사에서 인터넷 조사 의무가 강화됐고, 상표브로커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등의 노력으로 상표브로커는 크게 감소했다. 그럼에도 ‘골목식당’의 덮죽, BTS 선점 등 상표브로커들의 행태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해외에서의 피해는 더 심각하다. 중국에서 서울우유, 설빙 등 우리 기업의 상표는 몇천 건씩 대량으로 선점되었다.

선출원주의의 폐해는 이뿐만 아니다. 올해 신세계는 SSG 야구단 이름으로 ‘LANDERS’를 확정한 후 관련 상표를 127건이나 출원했다. 대기업의 상표 출원 전략은 전방위적인 상표 선점이라 할 수 있다. 당장 사용할 계획이 없는 상표라고 하더라도 미리 선점하는 방식으로 유사상표들을 출원해 둔다.

즉 선출원주의는 ‘출원’을 먼저 하는 자에게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출원을 자신 있게 ‘먼저’할 수 있는 자금력과 전문 인력이 있는 대기업이 상표를 선점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웬만한 상표는 대기업이 다 가지고 있다며 상표권 분야에서마저도 빈부격차가 느껴져 씁쓸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폐단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왜 선출원주의를 유지하는 걸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법적 증명의 용이성, 법적 상태의 안정성 때문이다. 출원일을 기준으로 법적 판단을 하게 되면 누가 먼저 출원했는지를 별도로 입증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사용일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된다면 먼저 사용했음을 주장하는 자가 입증을 해야 한다. 선사용주의를 취하는 미국도 먼저 출원한 자를 보호하고, 예외적으로 선사용을 주장하여 상표권을 주장하는 자는 소송을 제기하고, 승소할 경우 사용하고 있는 제한된 지역 내에서의 상표권만 주장할 수 있다.

즉 최초 사용일을 객관적, 법적으로 증명하기란 매우 어렵고, 증명하더라도 ‘소송’을 통해 증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는 ‘출원일’을 중심으로 상표의 등록 가부를 결정한다.

선출원주의는 세계적인 기준이고 추세이다. 그렇다면 선출원주의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을 더 촘촘히 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다. 그렇다면 사업의 첫 시작이 되는 상표권 확보에서마저 기울어진 운동장을 느껴야 하는 개인이나 중소기업을 위해서 어떤 제도적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까. 선출원주의 보완책으로 두고 있는 불사용 취소심판를 예로 들어보자. 여러 상표를 선점해 두는 기업에서는 사용하지 않더라도 등록 후 3년까지는 해당 상표들을 마음껏 선점해둘 수 있다. 그렇다면 불사용 기간으로 두고 있는 3년이라는 기간이 사업 환경이 급속하게 변하는 현 시점에서도 합리적인 시간일까.정부, 기업, 전문가들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함께 모색해 나갈 필요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전소정 지심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