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골트의 협곡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입력일 2021-07-08 14:00 수정일 2021-07-08 20:57 발행일 2021-07-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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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지난 달 발생한 쿠팡 물류센터 화재는 축구장 15개의 넓이에 해당되는 건물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그 과정에 소방서 구조대장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든 사건은 따로 있다. 화재가 발생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김범석 이사회 의장은 법인 등기이사와 이사회 의장 등 국내 직책을 모두 내려놨다. 

물론 미국 법인의 최고경영자 겸 이사회 의장은 그대로다. 사고가 수습되기도 전 최고경영자가 ‘글로벌 경영에 전념하겠다’며 사퇴를 발표한 것은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내년 1월에 시행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앞두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행보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기업들은 ‘규모경쟁’에서 ‘속도경쟁’으로 더욱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속도경쟁에 대한 새로운 개념으로 ‘블리츠스케일링’(Blitzscaling)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 개념은 링크트인의 창업자인 레이드 호프먼에 의해 제안된 개념이다. 기습 공격을 의미하는 ‘Blitzkrieg’와 규모 확장을 의미하는 ‘Scale up’이 합쳐진 조어로 ‘성장을 위한 성장’을 강조한다. 지금과 같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업을 성장시키려면 효율보다 속도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급속한 양적 성장은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많은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소프트웨어 회사인 오라클은 1990년대 초 블리츠스케일 기간 동안 지나치게 매출 신장에만 집중하다 기술과 재정 양쪽에서 심각하게 뒤쳐졌고 거의 파산에 가까운 상태에 이르렀다. 쿠팡 물류센터 화재도 빠른 성장에 집중한 나머지 몸집을 키우고 첨단을 지향한다면서도 노동환경은 과거 환경에서 벗어지나 못한 데서 기인했다.

이처럼 현재와 같이 구조화된 양적 성장은 사회적 문제점들을 비효율적으로 풀어갈 뿐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한다. 사람의 키도 20세 전후가 되면 거의 다 자란다. 청소년 시기에는 키가 무한히 클 듯하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그 다음부터는 키라는 양적 성장보다 건강과 인격이라는 질적 성장이 더 중요해진다.

이제 양적 성장은 균형적 성장으로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더 이상 우리는 양적 성장을 매개로 한 임금이나 이자, 지대나 배당, 연금 등의 자본과 결탁한 공범관계를 형성해서는 안된다. 또한 소수의 경영진들이 나머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창조한다는 좁은 생각, 더 나아가 노동자는 비용 절감을 위한 대상일 뿐이라는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시점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노동과 여가, 경제 산출물들을 공평하게 나눠주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일할 수 없는 사람들도 그냥 포기하지 않는 그런 경영방식이 필요한 때다.

아인 랜드의 소설 ‘아틀라스’에는 ‘골트의 협곡’(Galt’s Gulch)이 등장한다. 골트의 협곡은 공동의 비전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싶어 하는 이상적인 안식처를 뜻한다. 이것이 양적 성장을 극복하고 균형적 성장으로 가는 이상적인 기업의 모습이 아닐까. 쿠팡이 꼭 골트의 협곡을 횡단하기를 기대해본다.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