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사다리 걷어차기

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
입력일 2021-07-01 14:06 수정일 2021-07-01 14:07 발행일 2021-07-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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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말이 있다. 사다리를 걸쳐 놓고 높은 곳으로 먼저 올라간 사람이 이후에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있는 높은 곳에 올라오지 못하도록 그 사다리를 걷어찬다는 의미이다.

교육부 정책에 의하면 특수목적 고등학교 중 일부(외국어고등학교, 국제고등학교)와 자율형 고등학교(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자율형 공립고등학교, 자율학교)를 폐지해 2025년까지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이다. 특수목적 고등학교 중 과학고·예술고·체고·마이스터고 등을 제외하고 외국어고등학교와 국제고등학교만 논란이 되고 있다. 그 여파로 외고와 자사고는 조만간 폐지될 위기에 놓여 있다.

폐지에 찬성하는 이유로 외고, 국제고, 자사고가 본연의 설립 취지와 달리 입시 전문기관으로 변질됐다는 것과 과도한 교육비 부담으로 귀족학교 내지는 엘리트 학교로 변질됐다는 것 등이 주로 거론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수목적 고등학교들이 모두 폐지된다면 고등학교의 입시 전문기관으로의 변질이 사라질 것인가?

강남 8학군의 일반 고등학교들은 특목고가 아니다. 이들의 수혜가 예상된다. 대학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소위 부촌의 8학군 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면 그야말로 미친 집값을 감당하며 해당 학교 근처에 거주해야 한다. 당연히 소득이 높고 재정적 지원이 충분한 부모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현재 꽤 많은 사회지도층 인사들과 그 자녀들이 특목고 출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교육이 사회적 성공을 위한 사다리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왔기에 고위층 내지는 재력 있는 부모들은 해외 원정출산을 하기도 하고, 자사고, 외고보다 훨씬 비싼 국제고와 외국의 고등학교에 자녀를 진학시키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대학은 변함없이 서열화 되어 있는데 고등학교만 평준화한다는 게 과연 무슨 의미인지 의구심이 든다. 서열화된 대학들이 존재하는 한 자사고와 외고가 폐지되더라도 새로운 엘리트 학교 또는 학원은 필연적으로 생겨나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교육 평준화를 이루려면 차라리 대학을 평준화해야 하지 않을까?

전인적인 교육정책은 장기적으로 충분히 준비해 백년대계를 논해야 한다. 부족한 부분들은 전문가들과 함께 고민해 꼼꼼하게 보완해 나가야 한다.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연구해야 한다. 무작정 특목고를 폐지하기보다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 등을 좀 더 확장하고 폭넓게 운영할 방안을 연구해 볼 필요도 있다. 학생들의 수준과 니즈에 맞는 질 좋은 교육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연구해 봐야 한다. 학력의 지역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선제 돼야 하는지도 생각해 보자. 정책결정자들은 이미 그 혜택을 누렸으니 추후 올라오고 싶은 사람들에게 돌아갈 기회에는 별반 관심이 없다는 오해를 받지 말아야 하겠다. 나는 이미 올라왔으니 나에게는 용도가 없어진 사다리를 멀리 걷어차서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될 기회를 원천봉쇄하기 보다는 좀 더 견고하고 튼튼한 사다리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연구하고, 견고한 사다리를 내려 주며 함께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