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칼럼] 은퇴갈등과 괴물노인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21-06-27 16:09 수정일 2021-06-27 16:46 발행일 2021-06-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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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고령사회는 성숙사회다. 늙음은 변화보다 안정에 가깝다. 때문에 감축성장·고령사회의 선진국일수록 대부분 조용하고 평화롭다. 한국도 조만간 정적인 사회풍경에 휩싸일 전망이다. 주도그룹은 역시 고령인구다. 아직은 100명 중 16명(15.7%·2020년)에 불과하나 이 속도면 초고령사회(20%)가 눈앞이다. 가장 빨리 늙어가는 세계신기록 보유국다운 면모다. 늙은 사회는 낯설다. 본인·사회 모두 마찬가지다. 삶의 이치라지만, 받아들이기 쉽잖다. 어른답게 늙기가 힘들거니와 본능처럼 살기도 어렵다. 아슬아슬한 하루하루가 노후의 삶을 지배할 수밖에 없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청년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노년판 방황과 갈등도 질풍노도처럼 닥쳐온다. 관계단절·소득감소·유병생활은 늙음과 만나 우울·피폐감을 극대화한다. 연착륙하지 않으면 불행은 시간문제다. 후폭풍은 왕왕 가정을 넘어 사회로까지 번진다. 집안 문제로 남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문제는 밖에서 갈등을 낳을 때다. 아쉽게도 노년발 경착륙 사건사고가 계속된다. 고령인구가 낳은 갈등·사건의 불상사가 그렇다. 실제 길거리·지하철에서의 폭행·난동사건 중 노인이 연루된 경우가 적잖다.

초고령사회 일본은 은퇴노인의 갈등 유발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규정된다. 절대비중이 늘자 자연스레 불필요한 문제 유발의 빈도·규모가 커졌다. 은퇴 이후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이란 과제를 풀지 못한 잉여인간화된 고령인구가 잠재대상이다. 그나마 가족분쟁이면 낫다. 집밖 외출에서 갈등을 낳으면 민폐를 넘어 범죄로도 연결된다. 일본에선 ‘망주(妄走)·폭주(暴走)의 노인문제’로 인식된다. 2010년 나온 ‘단카이몬스터’란 책은 대놓고 문제노인을 괴물(Monster)로 부른다. 미쳐 날뛴다는 의미다. 책은 폭주노인의 사건기록을 다뤘다. 부적응적 민폐에서 시작해 강력범죄로 비화되는 슬픈 현실을 실었다. 10년 전 책인데 지금도 자주 회자된다.

‘한국판 괴물노인’의 등장도 임박했다. 베이비부머(1955~75년생)의 선두세대가 올해부터 만 65세에 진입한다.이들은 부모세대보다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높은 최후 세대다. 청춘시절엔 민주화의 상징이자 산업화의 주역으로 상당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그들의 왕년은 실로 대단했다. 다만 여기까지다. 은퇴는 파괴적 단절을 뜻한다. 열심히 살았지만, 현실은 뒷방의 퇴물 신세다. 짜증과 분노는 여기서 비롯된다.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지만 대화 상대조차 없다. 인생 종반부의 좌절·소외·억울함이 변질된 형태로 외부화될 수밖에 없다. 왕년의 존재감이 기억날수록 왜곡돼 민폐·범죄영역으로 넓어지는 악순환이다.

‘괴물’까지는 몰라도 ‘불량’으로 비춰지는 고령인구는 갈수록 늘어난다. 가뜩이나 심해진 노청 갈등에 새롭게 기름을 부을 재료다. 은퇴 이후 좇음직한 생활 샘플은커녕 활동모델조차 변변찮은 한국으로선 신속한 대응책 마련이 요구된다. 착각에서 벗어나도록, 베테랑이 쓰여지도록 새로운 판짜기가 시급하다. 아쉽게도 출현 징후는 목격된다. 연령별 범죄율을 보면 60세 이상 범죄건수는 2019년 23만3443건으로 2012년(12만5012건) 대비 2배나 증가했다(KOSIS). 70세 이상은 2만6480건에서 5만8521건으로 121% 늘었다. 이중 70대 이상의 강력범죄는 358건에서 1032건으로 288%나 급증했다. 자기통제의 부재가 만들어낸 불량노인발 사건사고다. 전에 없던 불상사의 단면이다. 방치는 곤란하다. 내버려두기엔 파급력과 확장성이 큰 새로운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