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호랑이의 등

엄길청 국제투자분석사/미래경영학자 기자
입력일 2021-06-02 15:00 수정일 2021-06-02 15:00 발행일 2021-06-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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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엄길청 국제투자분석사/미래경영학자

앞길이 얼마나 험난한 지도 모르고 당장의 호사와 쾌감에 젖은 채 여세를 몰아 더 질주하려 할 때 우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고 말한다.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이나 국민들이 많이 참여하는 자산시장은 더러 이런 시기가 있다,

2008년 글로벌경제위기 이후 우리경제는 그 충격으로 잠시 침체국면을 맞았다. 그런데 2009년부터 갑자기 미국이 양적완화(QE)란 이름으로 통화를 공급하자, 중국으로 실물경제 생산수요가 몰리면서 마침 우리나라가 서서히 정리하려던 중진국형의 중후장대 산업들이 다시 급속히 살아나는 벼락호황을 누렸다. 주식시장에서 한 때 ‘차화정’이란 단어가 회자된 시기이기도 한데. 자동차, 석유화학, 정유, 조선 등의 산업생산 수요신장이 그 시기이다.

그 여파는 다시 중국의 내수확장으로 이어져 소매점과 화장품, 일상소비재 등의 중국시장 진출 붐으로 번져나가서 관련 대기업들이 직접 중국에 투자하여 기세를 잠시 떨치곤 했다. 지금의 중국경제 위세도 그 시기에 확장된 경제성장 현상을 자신들의 저력으로 오판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이 5-6%대의 성장유지도 점점 벅찬 입장이다. 이 직후에 등판한 시진핑은 이때 오른 호랑이 등에서 마치 경제대국의 정치리더인양 살아간다.

우리나라 주가는 그 시기에 2009년 800포인트대의 코스피가 급등해 2011년에 2000포인트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2011년 중반이후는 거의 10년 가까이 주가가 횡보를 거듭하다가 급기야 코로나를 만났다. 당시 2012년 이후의 현대자동차, 금호석유화학 등이나, 2015년 이후의 아모레퍼시픽, 한미약품 등의 주가가 벼락같이 급등하는 호사를 누린 이후 맞이한 긴 주가 흑 역사도 여기에 맥을 같이 한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침몰시킨 2020년 이후 글로벌 자산시장은 다시 미국의 통화공급이란 호랑이 등에 타고 있다. 요즘 법정현금이 필요 없다는 가상코인들도 다시 미국달러 가치가 오르고 금리가 오르면 중대한 타격은 불을 보듯 하다.

기업가도 일생에서 그런 시기가 있다. 자기 사업이 어느 시기에 갑자기 확장이 되면 그만 호랑이 등에 올라타게 된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대우창업자 김우중 회장이 대표적이다. 이제야 말이지만 대우가 1990년 중반에 당시 문민정부가 시행한 세계화 전략의 대응을 조금만 신중하게 했어도 좋았는데 그는 그러질 못했다. 얼마안가 1997년 IMF사태가 터졌고 이미 해외부채로 몸집을 불린 대우는 즉각 파산했다.

코로나 이후에 호랑이 등에 올라간 기업들은 평소 컴퓨터와 모바일기반의 연결기술 비즈니스 모델을 장착하고 있다가 돌연 출몰한 ‘비대면 세상’에 대박을 만난 플랫폼사업, 배달사업, 엔터사업, 바이오사업, 금융결제사업 등이다. 이들의 시가총액은 코로나의 비극에서도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다시 세상은 반드시 냉정하게 침착해지고 가라앉는다. 한데 이 시기에 평소 선진국에 비해 위험자산 비중이 낮은 우리나라는 노년층과 청년들과 어린이까지 갑자기 준비 없이 위험자산시장인 주식시장과 그 파생시장, 나아가 코인시장에 불쑥 들어왔다. 그것도 팽창한 통화유동성과 낮은 금리와 엄청난 재정지출과 심지어 가상유동성까지 넘실대는 이 시기에 들어온 것이다.

밈(meme)이라는 단어가 있다. SNS상으로 돌고 도는 소통이나 현상의 사회적 전이를 그렇게 말하는데, 원래는 도킨스가 생물학에서 사용한 말이다, 요즘 위험자산을 투자하는 일부 청년들 중에는 자신들이 만드는 그 소통의 결집된 힘으로 원하는 투자세상을 직접 만들어 보려는 공개적인 가격모의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위험자산 시장에서는 멈추어야 한다. 결코 뜻대로 되지 않을뿐더러 지금 시장은 바로 호랑이 등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대면 소통에서의 의도적인 세 결집도 새로운 완력(muscle)일 뿐이다. 완력시세나 완력매매는 성공한 적이 없다.

엄길청 국제투자분석사/미래경영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