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자녀결혼은 부모노후에 달렸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21-05-23 14:52 수정일 2021-05-31 18:05 발행일 2021-05-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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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세상에 제일 힘든 농사가 자식농사라는 데 이견은 없다. 키워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얘기다. 그럼에도 부모라면 자식농사에 사활을 건다. 투입한 만큼 성과가 비례하지도 않으니 상황은 어렵고 갈등은 폭넓다. 때맞춰 물 주고 거름 주고 잡초를 뽑아줄 뿐더러 가지치고 꽃 피우도록 애지중지하지만, 열매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쉴새없이 정성을 다하는 것만이 부모 역할일 따름이다.

자식 농사의 백미는 자녀 독립일 듯하다. 언제까지나 봐줄 수 없기에 스스로 능력을 키워 둥지를 떠난다면 그것만큼 바람직한 결과는 없다. 슬하에 두고 싶어도 훨훨 날아가게끔 도와주는 게 실은 최고의 자녀농사다. 아쉽게도 시대상황은 자녀 독립을 방해한다. 제짝을 찾아 분화하는 건 본능이지만, 그럴 여력과 의지가 훼손된 시대다. 결혼을 통한 가족 형성이 힘들어진 탓이다. 경제적 독립문제다. 이로써 저성장·고실업의 그림자는 결혼 카드를 고위험·저수익의 선택지로 전락시켰다.

그렇다고 자립을 내버려둘 수는 없다. 부모로선 넘어야 할 산이다. 시대 상황이 가로막을지언정 독립의지까지 꺾이도록 방치해선 곤란하다. 최대한 방해 허들을 낮춰주는 게 좋다. 통제불능의 외부압력은 몰라도 통제할 수 있는 부모 변수를 우호적으로 조성하자는 얘기다. 적어도 부모의 존재가 자녀의 독립을 막아선 안된다는 취지다. 결정판은 부모의 노후준비 여부다. 부모의 노후불안은 자녀독립에 딴지를 걸 수밖에 없다. 반대로 노후준비가 잘 됐을수록 자녀 앞길은 탄탄해진다.

부모의 노후준비와 자녀의 독립결정은 비례한다. 한국처럼 복잡·미묘한 가족관계와 세대부조를 볼 때 결혼은 확실히 집안 혼사다. 키움과 돌봄의 부양 및 봉양의 맞교환은 그간 공고한 상식에 가까웠다. 다만 이게 쉽지 않아졌다는 게 문제다. 부모봉양이 결혼결정 때 중요한 고려변수 중 하나로 떠올랐다는 의미다. 다 좋아도 부모봉양 문제로 결혼이 무위가 되는 불상사까지 왕왕 펼쳐진다.

선한 의도도 때때로 나쁜 결과를 낳는다. 자식농사에 올인했다고 본인 노후가 좋아지는 건 아니다. 바라지도 않겠으나, 바라서도 안 된다. 대신 적절한 거리두기로 ‘본인 노후와 자녀 지원’의 무게중심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자녀 지원은 본인 노후를 먼저 챙긴 후 능력의 범위 안에서 제한하는 게 자연스럽다. 길게 봐 자녀독립을 돕고 부모 노후를 찾는 신의 한수에 가깝다. 언제까지인지, 얼마만큼인지는 개인 사정이다. 기준도 샘플도 없다. 5060세대면 자녀에게 쏟는 것만큼 본인부터 챙기는 게 맞다.

자립적인 부모가 독립적인 자녀를 만든다. 자녀가 원하는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되 우선순위는 부모 독립에 방점을 찍는 게 권유된다. 적어도 자녀로부터의 금전지원 없이 살아내도록 미리미리 쟁여둘 필요가 있다. 부모 봉양은 해주면 고맙지만 의무일 수는 없다. 결혼 후 무난히 잘 살아가는 자녀일수록 양가부모와의 독립환경은 확실한 편이다. 어정쩡한 반대급부가 남았을수록 자녀독립은 멀어진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 했다. 뿌린대로 거둔다면 부모의 미래는 본인이 스스로 준비하는 게 필수다. 부모의 완성된 노후준비가 자녀의 행복한 자립생활을 결정짓는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