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K무비와 발리우드

이재경 건대교수/ 변호사
입력일 2021-05-06 14:10 수정일 2021-05-31 18:03 발행일 2021-05-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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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대교수/ 변호사

인생은 60부터? 이 참에 옛말부터 바꿔야겠다. 인생은 70부터라고. 74세의 윤여정이 대한민국 배우로서는 최초로 제93회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1980년대 미국 남부 아칸소에 이주한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미나리’에서 윤여정은 딸을 돕기 위해 미국 땅을 밟은 한국 할머니 역으로 아카데미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고 미국배우조합상 등 다른 관계자들의 영혼까지 앗아갔다.

본인이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애칭인 국민 할머니 등의 거창한 호칭을 굳이 쓰지 않더라도 그녀가 2020년 영화 ‘기생충’과 함께 우리 영화사에 남긴 족적과 이정표는 이제 대한민국 영화가 갈 곳이며 살 길이다.

작년과 올해 연이은 아카데미 수상으로 대한민국은 전 세계 영화산업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게 됐다. 더 많은 국내 영화인들에게 더 좋은 기회가 열리고 있다. 국내에서 이미 톱클래스로 인정받는 배우 마동석은 2021년 말 개봉 예정인 마블의 어벤저스 시리즈 후속작 ‘이터널스’(Eternals)에서 육중한 체구만큼 비중 있는 슈퍼히어로 ‘길가메시’로 마블 영화팬들에게 한국 배우의 미친 존재감을 알릴 것이다.

‘기생충’의 최우식은 할리우드의 로맨스 영화 ‘전생’(Past Lives)에 출연하며 세계 무대를 본격적으로 노크한다. ‘꽃보다 남자’ 이민호는 애플TV 플러스가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하는 드라마 ‘파친코’ 주연으로 포스트 윤여정을 노린다. 4대에 걸친 재일동포 가족사를 그린 작품인 만큼 세계인들의 흥미와 감동을 끌어당길 요소가 넘치며 윤여정의 연기력도 작품의 성공에 힘을 보탠다.

크게 되려면 더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 멀고도 험하게만 느껴졌던 미국 할리우드 그리고 감히 넘볼 수 없었던 유럽 영화계도 이제 우리 영화인들의 앞마당으로 다가온다. 단순히 마케팅 차원에서 조미료 같은 조연 수준이 아니다. 한국 영화의 드높아진 위상을 등에 업고 우리 배우는 연기력과 잠재력에 힘입어 굵직굵직한 주연급으로 등장하고 있다.

우리 영화의 진출 지역도 다양해지고 공략 장르도 넓어지고 있다. 2020년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심은경, 미국·일본·한국을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배두나 등이 차곡차곡 필리모그래피를 쌓아가며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넷플릭스 등 OTT의 자체 콘텐츠 제작 열풍과 함께 인종, 성별 등 다양성을 추구하는 흐름은 그 동안 소외됐던 우리에게 ‘노마크 찬스’와도 같다. ‘기생충’ ‘미나리’의 쾌거가 반짝 현상에 그치지 않으려면 길게 내다보고 준비해야 한다. 2009년 영화 ‘슬럼독 밀리언에어’의 아카데미 9개 부문 수상 이후 세계 영화계의 꽃으로 자리잡은 인도 발리우드의 성장 과정은 우리에게 좋은 벤치마킹 재료다.

재미있는 스토리 몇개, 연기파 배우 몇명만으로는 한 나라의 영화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 뭄바이 등에 영화종합촬영소, 영화인양성학교를 갖추고 우수한 IT인력이 컴퓨터그래픽을 뒷받침하는 발리우드를 본받아야 한다. 원히트 원더가 아니라 ‘미나리’풀처럼 ‘원더풀’(Wonder 풀)로 우리 영화가 자라나도록.

이재경 건대교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