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인생, 마지막 집 찾기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21-02-04 14:01 수정일 2021-05-31 17:53 발행일 2021-02-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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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서울 집값이 점입가경이다. 장삼이사(張三李四) 눈엔 상식을 벗어났다. 올라도 정도가 있지 확실히 난리통(?)이다. 판단은 어렵고 예측은 힘들다. 남은 건 불확실성뿐. 인생 최고가 쇼핑을 둘러싼 혼란은 반복된다. 서울이란 한정공간이 남긴 수급 붕괴의 충격은 짙고 무거울 전망이다. 그만큼 욕망은 확장된다. 더 늦고 더 뛰기 전에 서울집을 가지려는 동기다. 셈법은 복잡하나 방향은 자가(自家) 마련이다. 연령불문 앞다퉈 집값 동향에 귀를 쫑긋한다. 열심히 살피고, 세심히 고른다.

탓할 이유는 없다. 자본주의에선 자연스런 행위다. 합리적인 인간의 효율적인 추구다. 선택결과의 본인 귀속이면 그걸로 족하다. 다만 아쉬운 건 남는다. 다른 것도 이 정도 애정과 관심을 갖자는 얘기다.

차익 실현의 집뿐만 아니라 인생 최후의 집이 그렇다. 마지막 집을 이렇듯 고른다면 노후 품질은 상당부분 업그레이드된다. 아쉽게도 대부분 그렇지 않다. 은퇴 이후 및 유병노후를 함께할 최후의 거주공간에 대한 고민과 실천은 별로다. 당연하다는 듯 현재 생활이 계속되는 현역 감각이 전제된다. 언제나처럼 가족과 함께 아파트에 살며 어떤 식이든 일도 계속할 걸로 받아들인다.

현실은 반대에 가깝다. 늙음은 미래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늙음과 동반되는 무직·유병·고립은 시차만 존재하지 동시다발적이다. 이때 불안한 노후를 따뜻하게 품어안아줄 집이야말로 인생 최후의 안전판이자 보호막이다. 당연히 고려사항이 많고 선행조정이 필요한 카드다. 그럼에도 정작 닥쳐야 고른다. 황망하니 서두를 수밖에 없다. 또 늙고 아프니 당사자보단 보호자(직계가족)가 대개 고른다. 설상가상인 건 많은 경우 본인 뜻과 무관하게 종착지는 요양원·요양병원을 향한다. 간병해줄 여력이 없어서다. 본인은 예외라 여긴다면 착각이다. 주변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엄연한 현실이다.

늙어서 어떤 집에 살 것이냐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당장 살 집은 아니라도 미리미리 준비해두는 게 좋다. 능력이 있고, 의지가 있을 때 적어도 요구 조건과 선택 의향은 정해둬야 훗날 불행을 최소화할 수 있다. 아파트든 단독이든, 농촌이든 도시든 본인 의도가 충분히 반영된 인생 최후의 집을 준비할 때 노후 품질은 높아진다. 자녀 분가 등 인생 숙제가 끝날 때에 맞춰 액션 플랜을 가동하면 자연스럽다. 충분한 대화와 꾸준한 준비로 갈등은 줄이면서 최후의 행복 시즌을 시작하자는 취지다. 해서 2021년 서울 집값의 향배만큼 인생 최후의 공간 선택도 본격적인 관심과 대응이 중요하다.

물론 아직은 선택지가 적다. 유병노후를 상정하면 내집 아니면 시설뿐이다. 다양한 지불여력과 신체능력을 감안한 맞춤형 노후공간은 생각보다 적다. 일본 등 선진국처럼 십인십색의 노후욕구에 부응하는 특화된 거주공간은 공급 물량이 제한된다. 건강하고 부유한 고령 고객을 타깃으로 한 분양형 고가주택이 그나마 시장을 형성한다. 때문에 중산층조차 마땅한 노후공간은 가시권에 거의 없다. 앞으로는 달라진다. 초고령사회가 코앞이라 수요 증가에 부응한 공급체계는 확대될 수밖에 없다. 건설·의료 등 관련주체를 중심으로 늙음에 포커스를 맞춘 최후의 집을 제안하려는 움직임이 구체적이다. 인생 최후의 집은 노후생활에 결정적이다. 일찌감치, 세심하게 준비하는 게 좋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