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이익공유제, 나눔보다 상생에 초점

이계안 2.1지속가능재단설립자
입력일 2021-01-27 14:00 수정일 2021-05-31 17:52 발행일 2021-01-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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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안
이계안 2.1지속가능재단설립자

“노동조합원의 완전고용을 보장한다. 단, 노조원 완전고용의 보장은 사장(社長)이 아니라 시장(市場)이 하는 것이다.”

1998년 46세 젊은 나이에 국제입찰로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성과로 현대자동차㈜ 사장이 된 필자한테 주어진 첫 번째 과제는 노동조합이 내건 “노동조합원의 완전 고용을 보장하라”는 요구에 답하는 것이었다. 당시 외환위기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이름만 명예인 명예퇴직도 모자라 정리해고까지 당한 노동조합이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을 위한 선결조건으로 이런 요구를 해왔다. 그리고 이런 요구에 필자는 위와 같은 답을 내놨다.

필자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가 회사의 이익을 첫째 주주, 둘째 노동자, 셋째 회사의 미래를 위한 투자재원으로 적정히 나누자는 이익공유제 (Profit Sharing)를 장기과제로 연구할 것을 제안했다. 노동조합원의 완전고용을 보장한다고 말한 것도 파격이었지만 회사의 이익을 주주뿐 아니라 임직원과 공유하자는 이익공유제를 말한 것은 불온해 보이기 조차했다. 여러 단서 조항에도 불구하고 완전고용 보장이나 이익공유제는 당시로서는 입에 담기도 어려운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기업인 현대자동차 사장으로서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파업의 파괴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훨씬 나아졌지만, 당시에는 임금의 인상 폭이나 회사가 창출한 부가가치의 배분을 놓고 벌리는 협상이 종국에는 불법과 합법을 넘나드는 파괴적인 파업으로 치닫곤 했다. 무노동 무임금은 말 뿐이고, 회사는 이런 저런 명목을 붙여서 파업으로 인한 노조원의 임금손실을 벌충해줘야만 했다.

파업으로 회사가 입는 손실과는 무관하게 회사 이익의 일정 부분을 상여금이나 성과급이라는 명목으로 내놔야만 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이익공유제를 제대로 설계해서 그 틀로 회사 이익의 일정부분을 노동자의 몫으로 배분한다면, 노조원은 파업으로 인해 회사가 손실을 입게 되면 자신들이 누릴 몫도 그에 비례하여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이익공유제는 임금협상 때면 관행처럼 맞게 되는 파괴적 파업의 악순환을 끝장내고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주주 임직원 등 이해관계자가 마음과 뜻 그리고 힘을 다해 회사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만 있다면.

이름은 같은 이익공유제이지만 결은 좀 다른 이익공유제가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코로나19가 낳은 양극화에 대한 답으로 비롯된 것이니 ‘코로나19 이익공유제’라고 불러야할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상징하는 단어 두 가지는 아마도 상호의존과 호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사회구성원 하나하나가 전체를 이루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이룬 부가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사회는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자기자리에서 제 몫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이익공유제’는 나누는 데 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산다는 데 그 가치가 주어져야 한다. 그런 원칙에 터잡아 설계되기를 소망한다.

이계안 2.1지속가능재단설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