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망건 쓰고 세수하는 정부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
입력일 2021-01-06 13:55 수정일 2021-05-31 17:48 발행일 2021-01-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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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

지난달 법정 최고이자율을 연 24%에서 20%로 인하하기로 당정협의가 있었다는 보도가 있은 후 한 달 만에 정부가 대부업법 시행령 개정을 입법예고했다. 오는 7월 시행 예정이다.

정부는 입법예고를 하면서 최고이자율 인하로 인한 저신용계층의 금융소외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이에 대한 대책을 올해 상반기 중에 마련하겠다 밝히고 있다. 그럼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인데 대책은 나중에 세우겠다는 것이다.

홍만중의 ‘순오지(旬五志)’에는 ‘망건 쓰고 세수한다(先網巾 後洗手·선망건 후세수)’는 해학 담긴 경구가 담겨 있다. 일에는 선후가 있어야 함을 빗댄 것이리라.

최고이자율 인하정책을 펴려면 인하함으로 혜택을 받는 총량과 아예 대출을 받지 못해 불법사금융에 노출되는 피해 총량에 대한 이익교량이 앞서야 당연하다. 또 불법사금융으로 전이되는 저신용자에 대한 대책의 수립이 있은 후에야 인하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것이 아닌가.

정부는 총량 측면에서 낮추는 것이 이익이라고 하지만 반대 논거도 만만치 않다. 허나 이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없었다. 그나마 이번 인하에는 비록 ‘망건을 쓴 후’이지만 ‘세수’를 하긴 하겠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하려면 제대로 하기를 주문한다. ‘선망건 후세수’도 문제지만 속도도 짚어야 할 일이다. ‘복숭아나무는 3년, 자두는 4년이 걸려야 결실을 본다(桃三李四)’는 격언처럼 말이다.

돌이켜보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이자제한법이 없어진 공간에서는 아무리 높은 이자를 받아도 이를 규제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이야 ‘불법사채’라는 말이 성립하지만 당시에는 법이 없어졌으니 ‘불법’도 없었던 것이다.

이를 방치할 수 없어 2002년 대부업법을 제정해 시행한 것은 다행이고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2002년 시행 당시 최고이자율은 연 66%에서 출발해 5년 후 49%로 인하된 이래 10년간 5번, 평균 2년에 한 번꼴로 인하했다. 2018년 24%로 인하하고 나서 2년이 지난 시점인 지난해 말 20%로 인하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이다.

1983년 79%에서 시작해 2010년 20%로 낮아지기까지 7년에 한 번 꼴로 인하한 일본과 대비된다. 일본의 경우 우리와 달리 최고이자율을 인하하는 법률 부칙에서 앞으로 이자율을 인하할 경우 어떤 과정을 거치겠다는 것을 밝히고 있어 시장이 예측을 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인하 순서, 속도 모두 한번 짚어 봐야 할 것이지만 또 한 가지 시점에도 ‘오비이락’격일 수 있는 묘한 일치점이 있다. 그 시점이란 것이 공교롭게도 3번의 총선·대선,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결정됐다는 것이다. 선거일로부터 짧게는 2개월, 평균 6.6개월을 앞둔 시점이었다. 결정일이 아니라 시행일 기준으로 보면 평균 3개월을 앞둔 시점이었다. 올해 4월에도 서울과 부산시장을 선출하는 매머드급 선거가 있다.

링컨 대통령의 “나에게 8시간 나무 베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6시간을 도끼 가는 데 사용하겠다”는 말은 정책결정에 있어서 참고할 만한 잠언이 아니겠는가.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