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대한항공을 다시 날게 하려면

이계안 2.1지속가능재단 설립자
입력일 2020-12-23 13:55 수정일 2021-06-12 01:00 발행일 2020-12-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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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안 2.1지속가능재단 설립자

지난 1998년, 대한민국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빌린 돈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을 때였다. 자동차 산업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기아차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현대차도 명예퇴직에 정리해고까지 극약 처방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정부는 기아차 새주인 찾기에 나섰다. 현대그룹도 국제경쟁입찰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당시 그룹 경영전략팀장인 필자가 기업구조조정을 총괄하던 이헌재 금융감독원장에게 보고했다. 그의 반응은 거칠었다. “X덩어리에 X덩어리를 합치면 더 큰 X덩어리가 될 뿐 아니냐”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마도 제 한 몸 추스르기도 어려운 현대차가 기아차 인수 경쟁에 뛰어들 것을 예상하지 못했었나 보다.

필자가 답했다. “지금 우리나라가 위기를 극복하려면 산업경쟁력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경쟁력을 높이는 데는 규모의 경제가 최고입니다. 자동차 산업이야 말로 규모의 경제가 가장 확실한 산업이고,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하면 규모의 경제를 이뤄 자동차 산업을 다시 도약시킬 수 있습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기아차 인수전에 뛰어들도록 설득했던 논리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기아차를 인수한 현대차는 플랫폼 공유, 부품 통합 등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루었고 명실공히 세계적인 자동차 그룹이 되는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대한항공이 맞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는 외환위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중하다. 무엇보다도 외환위기 당시 현대차의 위기가 전세계 자동차 산업은 제대로 굴러가는데 대한민국만 어려웠던 지극히 국지적인 병리현상이었던 반면, 지금 대한항공이 처한 위기는 전 세계가 멈춰선 상황에서 세계 어느 항공사도 내일을 말할 수 없는 위기다.

세계 각국은 자국 항공산업 궤멸을 막기 위해 천문학적 자금을 퍼붓고 있다. 그러나 우리 관계당국은 대한항공 모회사에 출자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대한항공은 그 자금으로 사실상 파산위기에 처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이 명예퇴직이나 정리해고를 통해 몸집을 단촐하게 한 것도 아니고, 조원태 회장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선언까지 했다. 인력 구조조정은 물론 수조원대의 채무 탕감도 없다. 도대체 무슨 비법이 있어서 날개는 있으나 날 수 없는 대한항공이 날개조차 없는 금호아시아나를 등에 업고 다시 날 수 있을까.

‘기본으로 돌아가라.’ 폐업의 위기로부터 화려하게 부활한 일본항공(JAL)을 보라. “현장에는 신의 음성이 있다”고 말하는 이나모리 교세라 창업자를 명예회장으로 영입하고 그의 지휘 아래 경제원리를 벗어나 정치적으로 개설한 항공노선을 폐쇄하고, 항공기 기종을 단순화해 정비 효율화를 이뤘으며, 노조와 치열한 협상을 통해 인력 구조조정까지 단행했다. 그리고 일본항공 JAL은 다시 화려하게 세계의 하늘을 날고 있다.

대한항공 모기업에 국민의 혈세를 넣는 매각방안이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미래를 위해 최선인 것인지 이제라도 다시 따져봐야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는데 늦은 시간은 없다. 그렇게 하는 결정은 언제해도 가장 빠르고 또 올바른 결정이다.

이계안 2.1지속가능재단 설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