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각자의 회랑으로

엄길청 글로벌애널리스트/미래경영학자
입력일 2020-11-05 16:00 수정일 2021-06-12 01:13 발행일 2020-11-06 19면
인쇄아이콘
엄길청
엄길청 글로벌애널리스트/미래경영학자

세상이 한 순간에 산산조각이 나고 있는 양상이다. 인류사에서 2020년을 영원히 잊지 못하게 할 코로나 팬데믹은 1970년대 미소냉전 해소이후 3차 세계대전의 공포를 벗어나면서 하나의 세계라는 평화와 공존의 아젠다로 연합하고 교류하던 지구촌의 해맑은 동작들을 한순간에 멈추게 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우루과이라운드나 기후협상, 심지어 다보스 포럼까지 그동안 서로 들떠서 진행했던 수많은 날들의 글로벌지구를 위한 수고들이 한순간에 신종바이러스의 창궐로 쓰러지는 자국 국민들의 희생과 고통 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져가고 있다.

그리고 저마다 내면에 웅크리고 자리하던 그들의 민낯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우선 중국정부는 홍콩을 데리고 그들의 국민들을 다시 40년 전 죽의 장막으로 발길을 서서히 돌리고 있는 인상이다. 중국 굴기의 패권이 문제가 아니라 내부 분열의 단속이 더 중요한 과제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미국도 이번의 대통령선거를 통해 그들의 내면을 다 드러내고 있다. 누구는 다시 총을 들고 싶은 마음들도 보이고, 누구는 다시 거리를 울분과 함성으로 뒤덮고 싶은 마음들도 보인다. 투표결과를 지역별로 보면 저렇게 하고 어떻게 하나의 합중국이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지역별 판도가 판이하고 지역별 친연성이 뚜렷하다. 그 뿐이 아니다. 민주주의 대의정치의 표상으로, 정치문화의 성숙한 상징으로 자랑하던 선거판이 끝까지 아수라장이 되는 모습은 막장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치와 경제와 문화의 선진국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유럽도 저마다 자국의 생존과 갈등과 안전에 허겁지겁 하고 있다. 영국은 바이러스 자체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프랑스는 지금 보이는 않는 공포와 협상을 해야 할 정도로 국민생명의 안전이 허둥대고 있다. 갑자기 총리가 바뀐 일본도 국제이슈에 아무런 기미가 없고, 유럽에서 그나마 여력이 좀 있던 독일도 미국의 혼돈과 유럽의 코로나 속에서 경황이 없기는 매 한가지이다. 이 와중에 작은 나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젠은 영토분쟁으로 재래식 전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의 주가는 오르내리고, 상당수 나라는 주택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도대체 지구의 안정이나 협력이나 호혜의 회복을 뭘 보고 믿고 이런 행동들을 무의식 속에서 과감하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개념 없이 그냥 해보는 머니게임인지 알 수가 없다.

자산을 투자는 투자시장은 역사도 길지 않지만 그 체제도 불안정하여 그동안 숱한 위기와 낭패를 거듭하여 만들어 냈다. 그럴 때마다 각국 정부가 나서서 자국 국민의 돈으로 메우고 재정으로 수습했다. 그 이면에는 중앙은행간의 협의가 있었고, 상응하는 규제와 감시가 강화되었고, 학문적으로는 자유와 합리와 효율의 새로운 거래공준과 가격준거의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작금의 세상사에는 개별정보화 시대이후 어느 부문이나 공준이나 준거의 힘은 찾아볼 수가 없다. 우선 언론의 현장과 정치나 행정의 사안도 그렇다, 정치인들에게서 사상가를 찾기 어렵고, 행정가들에게서 경륜을 발견할 수가 없다. 특히 그래도 통찰과 탁견으로 범용가치의 중심 추이던 언론들도 이미 생업과 진영 논리에 빠진지 오래라서 특정성향의 직업적 집단행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언론이 사회의 목탁이고 살아있는 지성이고 시대의 양심이라는 단어는 그 말을 꺼내는 사람이 어리석은 일이다.

이번에 미국 대선결과를 알아보려고 여러 소식을 찾아보니 정규미디어들은 그나마 신중을 기하느라 애쓰고 있는 반면에, 사회관계망이나 유튜브에서는 아무나 저마다 개인의 식견과 소식을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대개가 아전인수의 해석이고 무책임한 전망이고 분풀이거나 눈길 끌기였다. 정말 과학과 종교와 인문과 이상을 가꾸어온 우리 문명인의 삶이 이래도 되는지 모두에게 묻고 싶다.

가격놀음의 끝은 반드시 비참하게 온다. 역사의 교훈으로 보면 파탄과 방종의 대가는 자연의 재해나 사회충돌이나 나라전쟁으로부터 온다. 그 형태나 시기는 누구도 모르지만 반드시 온다. 지금 어느 나라, 어느 시장이나 그에 대한 대비책은 없다. 금리도 더 내릴 수 없고, 돈도 더 풀 것도 없다. 올라간 가격들만 추락하고 거래만 멈출 일이다.

이제 모두가 자기 이익과 기분과 비탄에 빠져 각자 “생존의 회랑”으로 들어가는 지금, 어린이는 태어나고 아프리카는 질병과 기아로 신음하고 있다. 어찌 할 것인가.

엄길청 글로벌애널리스트/미래경영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