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웹툰 검열인가, 정당한 항의인가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20-10-14 14:06 수정일 2021-06-12 01:19 발행일 2020-10-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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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웹툰은 21세기 IT환경에 가장 적합한 콘텐츠 장르로서 최근 한류도 일으키고 있다. 이렇듯 웹툰의 인기가 워낙 높다 보니까 웹툰에 대한 시비도 끊이지 않는다. 방송으로 인기를 모으는 웹툰작가 기안84의 ‘복학왕’을 둘러싼 여성혐오 논란에 대해 베스트셀러 ‘신과 함께’의 작가 주호민은 “옛날에는 국가가 검열을 했는데 지금은 독자가 한다. 시민 독재의 시대가 열렸다”고 비판적 견해를 밝혔다. 웹툰 세상은 더욱 시끄러워졌다. 진원의 웹툰 ‘체인지’도 작가 삭의 ‘헬퍼’와 함께 연쇄적인 여혐 의혹에 휩싸였다. 심지어 기안84가 ‘복학왕’ 최근 일화에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및 문 대통령을 조롱했다는 의혹까지 나왔다. 논란의 웹툰 연재 중단을 요청하는 국민 청원마저 등장하자 주 작가는 도덕적 우월, 미개, 계몽 등의 단어를 동원하면서 웹툰의 창작성이 위축된 상황을 강변했지만 논쟁이 더 시끄러워지자 해당 발언을 사과해야만 했다. 과연 웹툰 세상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통신기술이 가진 신속한 전파성, 표현에 대한 기술적 우월성을 발판으로 웹툰은 독자층을 광범위하게 확보했다. 주제의 다양성이나 산업의 확장성 측면에서 무척 고무적인 메카니즘인 것이다. 하지만 독자층이 다양한 만큼 컬트적, 일률적 팬덤이 아니라 어떤 주제, 표현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항상 터져나올 수 있으니 양날의 검이다. 성폭행 묘사, 살해, 고문 등 잔인한 장면이나 성의 상품화, 선정성은 늘 도마 위에 오른다. 성을 대가로 접근하는 여성의 모습이나 미성년자 몸매의 과도한 부각, 성관계를 연상케하는 표현이 포함됐다는 독자의 지적에 해당 작가는 사과문을 올리며 작품을 수정하거나 심지어 휴재를 선언하기도 한다. 웹툰 세상에서는 시민단체의 성격을 띠는 검열·고발 성격의 트위터 계정이 등장했다. 웹툰 내 여성혐오를 제보받는 트위터 계정 ‘웹미’는 “시대착오적 성별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고 미성년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체인지를 네이버 추천완결작에서 제외하라”면서 총공(총공격)을 선언했다. 웹미 측은 네이버 고객센터로 해당 웹툰을 유해 게시물로 신고하는 방법을 올리면서 독자 참여를 유도한다.

웹툰 창작자 입장에서는 국가의 공적 검열 외에 시민단체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웹미 등의 견제를 받으므로 결과적으로 이중 검열을 받는다고 볼멘 소리를 한다. TV, 애니메이션, 출판만화 등 전통적인 매체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주제의 선정이나 표현의 폭이 자유로워야 할 웹툰 속성에 역주행하는 상황이 웹미 등에 의해 벌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성숙한 민주사회로 접어드는 21세기, 타의적 압박이 강화되는 현상은 ‘열린 사회’가 아닐 것이다. 감시를 위한 감시에 빠지기 쉬운 시민단체의 폐해가 웹툰세상에서도 반복될 수는 없다. 물론 독자들의 정당한 비판은 충분히 경청해야 한다. 특히 우리 사회 곳곳에 아직 남아있는 남녀차별적 요소나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한 고질적 폐습을 고려할 때 웹미를 비롯한 독자들이 내놓는 객관적 분석이나 보편적 항의는 웹툰 창작에 적극 반영돼야 한다.

다만 웹툰도 예술적 창작의 산물이자 엄연히 문화산업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문화예술 영역에서 지나친 간섭이나 이중, 삼중 통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아동성애 등의 불법, 비윤리적 주제 표현에 대해서만 자율적으로 견제하는 움부즈만 제도의 수준에서 접근해야 한다. 만화가협회 산하 웹툰자율규제위원회도 자체 정화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계몽군주, 시민독재…. 참 어려운 용어들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테스형에게 세상이 왜 이런지 물어보기 전에 웹툰작가, 포털, 독자 모두 자문해야 한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웹툰인지?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