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쇼핑을 즐기는 아내와 공존하는 법

김시래 동국대 겸임교수, KMF위원장, 한국광고총연합회 전문위원
입력일 2020-09-28 14:22 수정일 2021-06-12 01:41 발행일 2020-09-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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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 동국대 겸임교수, KMF위원장, 한국광고총연합회 전문위원

아내는 쇼핑을 즐긴다. 산책하듯이 3시간을 즐겁게 돌아다닌다. 나는 50분을 못 견딘다. 미리 살 물건의 목록을 만들어 돈과 시간을 아끼자는 내 주장은 소용없다. 여자가 백화점을 가는 것이 꼭 물건을 사기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 28년이 걸렸다. 요즘엔 잠시 쫓아다니다 화장실 옆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쳐다보며 아내의 전화를 기다리거나 아예 일찌감치 책방으로 들어간다. 피차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면 된다. 요즘은 한술 더 떠 칭찬하기도 한다. 할인된 내 등산복을 꺼내든 그녀에게 대단하다고 했더니 싱글벙글이다. 살림꾼으로 인정받은 것이 기쁜 듯 했다. 인정받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잘하는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리더는 칭찬해서 잘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인정은 믿음을 다지고 공존을 일구는 뽀빠이 시금치다. 

소셜미디어에 자신을 올리는 일도 자기 좀 알아봐 달라는 호소다. ‘좋아요’를 받기 위해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다. 심리학자 로젠탈과 제이콥 (Rosenthal & Jacobson)은 학생들을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가 성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평범한 학생들을 우수한 학생들이라고 소개하면 성적 그대로 소개한 학생보다 더 좋은 성적이 나왔다. 학생들을 대하는 선생의 태도가 학생들의 자존감을 부추겨 태도와 행동이 바뀐 결과다.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먹고 살아간다. 따뜻한 말과 눈길로 키운 꽃이 더 잘 큰다는 연구를 들어보았는가? 비즈니스의 세계라고 다를 것이 없다. 서로의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더해가며 한해의 농사를 지어야 한다. 원맨 플레이가 아니라 원팀 플레이의 핵심은 서로의 다름에 대한 인정이다. 특공대의 구성원을 상상해보라. 뛰어난 사격수만 있다고 임무가 완수되는 것이 아니다. 문 잘 따고 운전이 능한 기술자가 모두 모여야 가능한 일이다. 남자는 물건을 사기위해 쇼핑하지만 여자는 천만의 말씀이다. 그 자체가 즐거운 시간이다. 설득의 제 1법칙은 자신과 다른 상대의 입장과 특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협상도 마찬가지다. 부처님도 상대에 따라 설법의 수준을 달리했다. 상대가 호의적이라면 실행의 아이디어로 곧바로 들어가라. 비지니스의 세계에서 입이 무겁다는 뜻은 말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말이 없다는 뜻이다. 쓸데없이 긴말을 늘어놓다 상대의 기우(杞憂)를 불러 일을 지연시키거나 화를 자초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러나 만약 상대가 애당초 부정적이면 흔쾌히 후퇴해라. “보완해서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싹싹하게 물러서는 것이 좋다.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는 노련한 협상가의 진면목이다. 길게보면 한두번의 협상 결렬은 신뢰를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심중을 헤아리기 어려운 상대다. 이 때 해결의 실마리를 그 자리에서 찾으려는 조급함은 금물이다. 전날밤 과음이나 부부싸움으로 컨디션 자체가 나쁜 경우도 있고 안중에도 없는 말로 의중을 떠보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라면 성급한 판단을 자제하고 3자의 증언이나 객관성이 검증된 유사 사례를 들려주며 조심스럽게 상대의 반응을 살피며 진의를 파악해야 한다. 한술 밥에 배부른 설득은 없다. 맷집으로 벽을 문으로 만드는 고수들을 많이 보았다. 설득이야말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김시래 동국대 겸임교수, KMF위원장, 한국광고총연합회 전문위원